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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신비의 세계를 찾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나는 오래전부터 동굴을 구경하고 싶었다.
산은 마치 그 품속에 간직한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보물들을 남에게 안보여 주려는 듯이, 그것을 영겁의 암흑으로 감싸 시치미를 떼고 앉아있기 때문에 나는 더욱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국동굴협회회원들이 강원도 삼척군의 대이동굴(대이동굴)을 현지답사중이라는 소식을 전해듣고 날짜를 잡아간 것이 지난 토요일. 그날 따라 날이 흐려서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막상 동굴에 들어가 보니 그 안에는 날씨는 물론 밤낮의 구별도 없었고, 춘하추동의 계절도 아랑곳없는 상온의 암흑세계여서 오직「헬메트」에 달린 불빛에 담겨오는 황홀한 세계만이있을 뿐이었다.

<뭍을 보고 가뭄생각>
나는 종유동굴(종유동굴)에 대하여 평소에 갖구 있던 호기심과 지상을 통해 동굴에 대한 기사를 수차 읽은 것 이외에는 별다른 사전지식이 없었던 탓으로, 아직은 탐험대원들 밖에 드나들지 않아 아무런 장치도 없는 이 관음굴(관음굴)을 돌아보기엔, 당일 내가 갖추고간 그복장과 장비가 너무나 허술했었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도 혼자 쓴웃음을 짓곤 한다.
잡목을 헤치며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관음굴이 있었다. 그렇게는 좁다고 할 수 없는 동굴입구를 뿌듯이 마냥 밀려나오는 물줄기부터 나는 신기롭기만 했다.
나는 이 끊임없이 밀려나오는 정결한 물사태를 보고 작년에 내가 가보았던 호남평야의 가뭄을 생각했다. 하늘을 원망스럽게 여길 만큼 물을 그다지도 아쉬워하던 한해민들. 이 흔한 물을 좀더 유용하게 활용할 방도는 없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가슴 죄며 안으로>
동굴 어귀에 들어서자「공포의 소」(소)라고 하는 동굴 늪이 우리가 들어갈 길을 막으며 어둠속에 이어져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곳에서인지 앞서 들어간 탐험대원들이 줄로 당겨주는「에어·보트」에 조심스럽게 몸을 싣고, 때로는 내려앉은 천장에 머리를 부딪칠세라 잔뜩 허리를 구부리기도 하고 손을 짚고 기어가기도 했다. 이렇게 동굴 초입부터 즐거운나의 고역은 시작되었다.
무릎 위까지 넘치는 차가운 냇물을 건너기에 한발짝 옮기는데도 무척 조심스러웠고, 때로는 절벽위에 좁게 트인 시렁길을 가슴 죄며 지나갔지만, 앞에 또 무엇이 전개될지 모르는 그 오묘하고 신비로운 조물주의 조화물 때문에 나는 자꾸만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직경1cm의 석순(석순)이 10cm 높이로 자라려면 줄잡아 5만년이 걸린다는 안내자의 말을염두에 두고서는 그 아름드리 종유석(종유석)들의 나이가 몇백만년이나 됐을 것인지 알길이없었다.

<순간에 저지른 실수>
높다란 벽을 타고 시원스럽게 드리운 폭포 같은 형태며, 어느 것은 겹으로 아낌없이 걸쳐놓은「커튼」같고, 어느 종유석은 장미꽃으로 수놓은「샹들리에」같고, 그리고 모든 구석구석엔 크고 작고 오밀조밀한 각양각색의 모양들이 저마다 빛깔을 달리하며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석진 시렁에 곱게 깔아 놓은 둣한 엶은 주황색의 동굴산호(산호), 가까운 천장에 무수히 뻗어있는 흰 종유석「스트로」를 만져보고 싶어 손이 갔을 때 힘없이 똑 떨어져 나는 속으로 무척 미안하기도 했다. 작은 웅덩이에서 조용히 서식한다는「꼬리치레 도룡룡」(도마뱀의 일종)은 어둠 속에서 눈은 기형적으로 튀어 나왔어도 보이지 않아 그 어둔한 동작이 무척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옆으로 혹은 위로 뻗은 사잇굴들은 뒤로 제쳐놓고 큰물줄기를 따라 더듬어 올라가기를 약 두 시간, 그곳에는 수세(수세)가 힘찬 동굴폭포가 약3m 높이서 떨어지고 있었다.

<협조로 바른 개발을>
안내자는 그 폭포를 넘어서야 비로소 동굴의 신비가 전개된다고 했다. 그 아름다운 양상을 나에게 보여주려고 무척 나를 격려했지만 한길 남짓 남겨놓은 나머지 절벽「코슨」가 아무래도 되돌아올 자신이 없어 나는 더 관람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일보사와 동굴협회회원 여러분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또 다시「공포의 소」를 건너 동굴 밖으로 빠져 나오기까지 약 두시간반 동안 관음굴을 답사했지만, 막상 집에 돌아와그 동굴의 도면을 눈여겨 봤을 때, 내가 갈 수 있었던 제1폭포까지의 거리는 폭포의 높이가30m나 된다는 제4폭포까지의 거리에 10분 의1도 못 미쳤다는 것을 알고 가족들에게 들려줄이야기가 궁해진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였다.
언젠가 그 동굴에 안전시설이 갖추어지면 가족들과 함께 또 한번 가보고도 싶지만 내가 지금도 염려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수백만년의 세월을 거쳐 이룩된 귀중한 천연동굴의 원형들이 우리 나라의 보배로서 길이 보존되고 바르게 개발되도록 우리는 서로 협조하고 아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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