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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에 '수술' 일임" vs "국회가 칼자루 잡아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끊임없이 정치개입 논란을 달고 다녔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지난 대선 때 댓글 사건과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계기로 ‘국정원 개혁’이라는 태풍에 직면하게 됐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농도는 다르지만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지난 28일 새누리당의 전략기획본부장인 김재원 의원과 민주당의 진성준 의원을 각각 만나 개혁의 방향을 들어봤다.

정권 바뀌면 원장 구속되는 관행 끊어야

자체 개혁 지켜보자는 김재원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김재원 [사진=조용철 기자]

김재원 의원은 “국정원의 국내 정보 업무를 줄이고 인터넷 공간에서의 댓글 대응은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이같이 밝히고 “이제 국정원은 대북 정보 수집과 테러·외교·산업 스파이 관련 정보 수집 업무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의원은 “공공기관장 인사와 관련해 국정원이 후보들에 대한 평판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잘못된 정보가 보고될 경우 억울하게 될 수 있고, 공공기관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인터넷 댓글 대응도 국정원이 나서는 대신 시민사회의 자정 기능에 맡길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추진 중인 국정원 개혁법에 대해선 “야당의 정치공세일 뿐”이라며 “남재준 국정원장이 추진 중인 개혁안을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 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장이 재판을 받거나 구속되는 일이 반복된다. 더 이상 이렇게 가면 안 된다. 발전된 나라 수준에 맞는 국정원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예전엔 종북 좌파나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정부 정책에 근거 없는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다. 2008년 광우병 사건이 대표적이다. 국정원이 대응하겠다고 나섰다가 원세훈 전 원장이 재판을 받게 된 거다. 이제는 국정원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국내 정보 활동은 최대한 줄이고 대북·대테러 정보나 우리 외교에 도움이 되는 정보 수집과 산업 스파이 문제 등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국내 정보 활동을 줄여야 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국정원 요원들이 공공기관장 후보들에 대한 평판이나 정보를 수집해 보고서를 만든다. 그런데 당사자들은 그런 보고서가 있는지, 또는 그 보고서에 무슨 내용이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다. 잘못된 정보에 대한 반론권도 없다. 만일 잘못된 정보로 보고서가 작성되고 그것이 인사 과정에서 주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면 당사자로선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런 평판 조사는 담당 기관이나 인력이 따로 있으니 거기에 맡기고, 국정원은 이 기능을 줄여나가자는 얘기다.”

-국회나 공공기관을 담당하는 국정원 요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국회는 모르겠고, 공공기관 인사에 관여할 수 있는 평판 조사를 (국정원이) 하면 기관들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지 않겠나.”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기능이 약해졌다는 지적도 많다.
“국정원이 그동안 북한과 직접 협상을 하면서 너무 북한에 노출됐다. 사실 국정원은 북한에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돼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대화를 준비하는 기관으로 비친다. 국정원이 통일부 일까지 한다면 문제 아닌가.”

-인터넷 댓글 작업은 어떻게 보나.
“(작업이 국내 정치 개입 성격을 띠지 않게끔) 아주 정교하게 할 수는 없지 않나. 인터넷이란 게 여론을 흔드는, 아주 거친 용어들이 난무하는 장이다. 여기에 국정원이 개입하는 역할은 이젠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사상의 자유 시장에 맡겨야 하지 않겠느나는 것이다. 국정원이 대응을 안 하면 허위사실에 휘둘릴 수도 있지만 선진화된 우리 시민의식에 일단 맡겨봐야 한다고 본다. 다만 인터넷에서 폭동을 선동한다든지, 북한에서 파견한 간첩이나 북한과 직접 연계된 세력을 내세우면 현행법 위반이니 그에 맞게 처벌하면 된다. 국정원이 사이버 공간에 개입하면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게 된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추진하는 개혁 내용을 아나.
“모른다. 다만 남 원장도 이런 측면들을 고려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누리당 수뇌부가 남 원장과 국정원 개혁에 대해 논의할 계획은 없나.
“없는 것으로 안다. 국정원의 성격상 일단 자체적으로 개혁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

-국내 정보 활동과 인터넷 댓글 중단 문제는 협의할 수 있지 않나.
“그 두 가지를 중단하는 문제도 국정원이 자체 판단해 줘야 한다. 디테일에선 당이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예 국정원 명칭을 ‘대외정보처’로 바꾸는 건 어떨까.
“그런 수준까지 개혁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내 의견은 국내 정보 활동을 축소하고 인터넷 공간에서 댓글 작업은 중단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밖에 국정원이 안보를 위해 해온 다른 형태의 대북 심리전은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야당의 국정원 개혁법 추진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야당이 주장하는 개혁(법안)은 정치공세이기 때문에 별개로 봐야 한다. 지금은 국정원의 개혁작업이 이뤄지고 있으니까 국정원이 내리는 결론을 본 다음에 생각하면 된다.”

-국정원의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대해 ?댓글 사건을 덮기 위한 술수?란 주장이 많은데.
“댓글 사건과 정상회담록 공개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댓글 사건과는 무관하게 국정원이 나름의 판단에 따라 공개한 것으로 본다.”

'통일해외정보원' 개칭, 국내 정치 손떼게

국정원 개혁법 발의한 진성준 민주당 의원

진성준 [사진=최정동 기자]

진성준 의원은 국정원 개혁의 선두주자 격이다. 최근 국정원의 국내·해외·대북 정보 수집 기능 중 정치 관여의 수단인 국내 정보 수집 기능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안엔 또 ▶통일해외정보원으로 개명 ▶국정원장 탄핵 소추 ▶국정원 비밀 활동비 폐지 ▶분기별 회계·사업 보고서의 국회 정보위원회 제출 ▶정치적 댓글 등 금지 ▶직권남용·도청 금지 ▶국회정보위의 국정원 통제에 대한 대통령의 협조 등을 규정했다. 한마디로 국회의 국정원 감시를 대폭 강화하자는 것이다. 국방위원회 위원이면서 정보위 관련 법안을 제출한 데 대해 진 의원은 “당 국정원 조사특위 위원이며 대선 기간 대변인으로 이 사태를 목격했기 때문에 발의했다”며 “앞으로 당론으로 추인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왜 국내 정보 수집 폐지가 핵심인가.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이 정치 사찰, 민간인 사찰 같은 정치 개입 의혹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 개입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활동은 은밀성을 기본으로 하는데 이를 이용해 정치에 불법 개입하고 선거에 개입했다. 이를 없애고 국내 보안정보에 대한 기획조정 권한과 대공수사권도 폐지해야 한다. 국정원이 정보 수집에 전담하면 수사권을 가질 이유가 없다. 명칭을 통일해외정보원으로 바꾸자는 것은 우리의 지향이 통일이기 때문이다.”

-정치 개입의 구체적인 증거는.
“이번에 ‘국가정보원 개혁을 위한 제안서’에 자세히 밝혔지만 국정원은 끊임없이 정치사찰 논쟁의 대상이 됐다. 과거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사찰, 노동조합 사찰이 있었고 법원이나 검찰을 압박했으며 시민단체활동에 대한 감시와 사찰, 4대 강 반대 교수 뒷조사도 있었다. 관행이기도 했지만 이런 일들이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도 벌어졌다. 그 정점이 이번 대선 개입이다.”

-그렇다고 정보 수집을 위한 비밀활동비까지 폐지해야 하나.
“좀 과할 수는 있지만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산이 이미 비밀로 운영되는데, 비밀활동비까지 따로 규정할 필요가 있나. 지금 국정원에 대한 국회의 예산 통제와 정부 내 통제가 제대로 안 된다. 예산도 정보위에 보고가 안 된다. 편성 단계에서 세부 내역 없이 총액으로 편성한다. 근거자료도 없다. 정보위원회 의원들이 ‘뭘 알아야 심사를 하지’라고 말할 정도다. 또 국회에 사후보고도 하지 않고 감사원 감사도 안 받고 자체 감사로 끝낸다. 그걸 정보위가 승인하면 끝이다. 국회 정보위의 회의를 공개해 감시통제가 제대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

-국정원장 탄핵 소추 규정을 담은 이유는.
“헌법상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돼 있어서 원장은 해임 건의나 탄핵 소추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조항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사실 원장이 과도하게 정치화돼 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근본적인 국정원 개혁을 못한 것도 현실적인 논리 때문에 그랬다. 방치하면 같은 사태가 계속 발생한다. 수술해야 한다. 정보원장을 대통령의 사람으로 임명되지 않게 임기를 보장한다든지, 다른 방식으로 선출하거나 임명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것만으로 국정원이 만든 폐해를 없앨 수 있을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국정원 전·현직 인사들은 국정원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하고 국정원 활동을 너무 공개하면 비밀이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한다.
“편견을 받을 짓을 국정원이 해왔다. 사명감을 가진 국정원 직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정권 입맛에 따라 충성하려는 윗사람들이 물을 흐린다. 하지만 국정원 해체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국민적 신뢰가 바닥이란 점을 유념해야 된다. 비밀 유지와 관련해선 국회정보위 소속 의원도 똑같이 비밀 엄수의 의무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지금 회의도 비공개로 진행하고 외부로 발설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관련 기능을 어디로 넘겨야 하나.
“정보 수집은 경찰이 하면 된다. 행정부서의 보안정보를 기획·조정하는 권한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넘기면 된다. 이 기획?조정 기능을 통해 군, 경찰, 검찰, 심지어 국세청도 통괄하는데 권한이 너무 크다. 대공 수사는 지금도 검찰·경찰·기무사에서 다 하고 있으니 그리로 넘기면 된다. 검찰은 법무부 장관을 중심으로 국회의 감시와 통제가 가능하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국내 정보 수집 외에 다른 분야의 국정원 개혁 방향은.
“이명박 정권 때 국내 정보 수집에 치중하고, 비판적인 시민세력이나 정치권 활동에 대한 감시를 너무 많이 해 대북 정보 능력이 약화되고 무너졌다고 한다. 그래서 핵실험을 언제 하는지, 로켓을 발사하는지, 김정일이 사망했는지도 모르고, 이런 상황이 됐다. 국내 파트를 없애고 이들을 안보와 직결된 대북 정보나 해외 정보 파트에 투입하면 된다.”

강찬호, 안성규 기자, 정리=예상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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