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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악의 『왕위』후계자|쿼너리 현악 사중주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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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다페스트」현악 4중주단이 은퇴한 오늘날 실내악의 세계적 명성의 자리는 누가 차지하고 있을까.「유렵」에서는 아마도「이탈리아」4중주단과「아마데우스」4중주단이 전통적인 세계적「앙상블」의 대표일 것 같다. 미국에서는「줄리어드」와 같은 1급 「그룹」 이 「유럽」의 1급 실내악단과 맞먹을만한 실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실내악 애호가들은 옛날의「부다페스트」4중주단의 우아한 완성미에 비견할「쿼너리」현악4중주단의 연주를 잊지 못할 것이다.
66년 「뉴요크」에서「데뷔」한「쿼너리」현악4중주단은 그 경력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10여년을 함께 연주해온 것 같은 아주 안정된 「스타일」로 연주한다.
「쿼너리」의「톤」은 윤택하면서도 명료하며,「앙상블」은 극히 완전하다.「쿼너리」는「부다페스트」현악4중주단의 후계자라고 할만한 다른 이유도 갖고 있다.

<아직은 어린 연륜>
「쿼너리」는 「부다페스트」현악4중주단의 제2「바이얼리니스트」였던「알렉산더·슈나이더」의 구상으로 「버몬트」의 「말보로」 음악제에서 창립됐으며 「쿼너리」란 이름은 지금은 없어진 「유럽」의 4중주단과 한때 연주한 일이 있는 「부다몌스트」의 「바이얼리니스트]「보리스·크로이트」가 l8세기「이탈리아」의 「바이얼린」제작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 이다.
그러나 「쿼너리」현악 4중주단의 성공은 그 자신의 특수한 음악적 실력의 산물이다.

<실력있는 대가들>
6피트 3인치의 큰키에 날씬한 몸매를 한 제1「바이열리니스트」「아놀드·스타인하르트」(32)는「로스앤젤레스」태생이며 58년도「래벤트리트」경연대회에서 수석을 차지한 대가이다.
제2「바이얼린」의 「존·댈리」(33)와「비을라」의「마이클·트리」(46)도 모두 유명한「바이얼린」교사의 아들이다.

<이기심 버린 합주>
「쿼너리」의 비공식 대변인이자「첼리스트」인「데이비드·소여」(43)는「토스카니니」가 지휘한 NBC「심퍼니」의 「멤버」였으며, 독주회도 여러번 가진 실력파다.
이들 네사람은 모두 완성된 독주가들이지만 함께 연주할 때는 예술적인 이기심을 완전히 버릴 줄도 안다.
대개의 4중주단에서는 제1「바이얼리니스트」가 대표격이지만「쿼너리」에는 실제적인 대표가 없다.
「쿼너리」는 때때로「바르토크」나「힌데미트」와 같은 2O세기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지만,「부다페스트」4중주단이 했던 것같이 전통적인 「레퍼터리」를 더즐긴다.
이들은 일하는 시간외에 함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여행 중에도 같은 기차나 같은 비행기를 타려하지 않으며, 흔히 각각 다른「호텔」에 머무른다.

<업무책임도 분담>
이들은 업무상의 책임도 분담하는데 「스타인하르트」는 여행을 조정하고,「댈리」는 금전관리를, 「소여」는 해외여행을 담당하고 「트리」는 「프로그램」을 짠다.「쿼너리」는 창립 당시인 65년에 10여회 연주회를 가졌었는데 올해는 각각 1천2백 「달러」를 받고 1백회의 연주회를 가질 계획이다.
이밖에「레코드」취입도 늘고 있는데 내년의「베토벤」2백주년행사를 위해 RCA「빅터」에서 16곡을 취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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