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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월 인 폭동 44년 만에 … 동성결혼 금단의 문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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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여성 커플이 연방대법원 판결에 기뻐하며 입양한 딸의 머리에 입을 맞추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AP=뉴시스]

1969년 6월 28일 오전 1시20분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술집 ‘스톤월 인’에 경찰 8명이 들이닥쳤다. 200여 명의 손님을 일렬로 세우고 신분증 검사를 시작했다. 여장 남성을 화장실로 끌고 가 신체검사까지 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어서 이런 식의 불심검문은 예사였다. 그러나 마피아가 운영한 이 술집은 예외였다. 경찰에 정기적으로 상납했기 때문이다. 한데 예고도 없이 경찰이 급습하자 군중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가던 레즈비언이 “구경만 할 거냐!”고 절규한 게 기폭제가 됐다. 경찰을 향해 동전이 날아들었다.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자 동전은 맥주깡통으로, 이어 벽돌로 바뀌며 폭동으로 번졌다. 이후 일주일 동안 그리니치빌리지는 동성애자들의 ‘해방구’가 됐다.

 차별과 냉대 속에 억눌려 왔던 동성애자의 울분이 스톤월 인 폭동을 계기로 분출했다. 이듬해 이를 기념하는 퍼레이드가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73년엔 미국 정신과의사협회가 동성애를 정신병 목록에서 처음 삭제했다. 그러나 역풍도 만만치 않았다. 72년 연방대법원은 동성결혼을 금지한 미네소타주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였고 이듬해 메릴랜드주는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주춤했던 동성애 인권운동은 78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하비 밀크가 게이로는 처음으로 선출직인 시의회 의원에 당선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하비는 “숨어만 있지 말고 앞으로 나서라”며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을 촉구했다. 그해 9월 하비가 동료 시의원에 의해 암살되자 동정 여론은 더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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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동성애자의 군 입대를 허용하기 위해 ‘묻지도 밝히지도 말라’는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들이 무더기로 군에서 쫓겨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96년엔 지난 20일(현지시간) 연방 대법원 판결의 대상이 된‘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이라는 결혼보호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 법에 반대했지만 대통령선거를 앞둔 그는 소신을 접고 법안에 서명했다. 그러자 이번엔 유명인사들의 커밍아웃이 잇따랐다. ‘토크쇼의 여왕’ 엘런 드제네러스가 97년 레즈비언이라고 밝혔다. 2000년엔 보수진영인 공화당의 딕 체니 부통령 후보가 동성결혼을 옹호하고 나섰다. 레즈비언 딸을 둔 그는 “자유란 모든 사람에게 해당돼야 한다”고 말해 동성애자의 지지를 받았다.

 엎치락뒤치락했던 미국의 동성애 인권운동은 2000년대 들어 만개했다. 2004년 매사추세츠주는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허용해 이듬해 동성결혼이 봇물을 이뤘다. 이어 코네티컷(2005년), 뉴저지(2006년)주도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2008년 캘리포니아주도 동참해 1만8000쌍의 동성커플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는 그해 11월 동성결혼 금지법을 다시 통과시켜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도 했다. 2010년엔 미국 의회가 ‘묻지도 밝히지도 말라’는 군대 내 동성애자 정책을 폐기했고 2012년 재선에 나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후보론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공식 지지했다. 지난달엔 보이스카우트연맹도 103년 만에 동성애 청소년의 가입을 허용했다.

 마침내 지난 20일 연방대법원이 96년 결혼보호법과 캘리포니아주의 동성결혼 금지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동성애 인권운동은 한 획을 긋게 됐다. 현재 미국엔 워싱턴DC를 비롯해 워싱턴·아이오와·미네소타·델라웨어·메릴랜드·코네티컷·메인·매사추세츠·뉴햄프셔·뉴욕·로드아일랜드·버몬트 등 12개 주에 이어, 지난 20일 대법원 판결로 8월부터 캘리포니아주까지 13개 주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게 된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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