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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로또대책과 악어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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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악어가 사람을 공격할 때 물고 한동안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는 삼켜버린다." "정부가 로또를 도입한 후 열풍이 불자 국민을 걱정해 대응책을 낸다. 그러고는 큼직하게 자기 몫을 챙긴다."

처음 글은 13세기 프랑스의 어느 신부가 박물지에 쓴 것이고, 그 다음은 로또와 관련한 정부의 최근 움직임을 요약한 것이다. 악어가 자비심이 있다면 애당초 사람을 물지 않았으면 될 일이고 정부가 국민의 사행심을 걱정한다면 새 복권을 만들지 않았으면 될 일이련만….

로또가 몰고온 여러 문제 중에서 세가지를 따져보자.

먼저 정부가 사행심을 크게 부추겨 그 후유증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경제 이론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위험을 싫어하기 때문에 도박은 피한다. 그것이 설령 공정한 게임일지라도 좀처럼 하려들지 않는다.

그런데 로또복권은 환급률로 따져볼 때 경마보다도 더 불리하고 위험한 도박인데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을까. 정부가 1등 당첨금이 엄청나게 높아지도록 설계했고 '인생역전'이라는 선동적인 광고까지 나와 사람들을 현혹시켰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거기에다 티켓을 수동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번호를 자기가 고를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첨 가능성이 커진 듯한 착각을 유도한 면도 있다. 어디에서나 일확천금의 꿈이 화두가 됐고 사람들은 합리성을 제쳐 둔 채 분위기에 휩쓸려 복권을 사들인 것이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돼 국민의 관심이 도박에 집중되고 열심히 일해 재산을 모으겠다는 의욕이 줄어든다면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없고 그 나라의 장래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둘째로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주로 중류 또는 그 이하 소득계층이라고 본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게 되는 결과가 된다. 외환위기 이후 소득이나 재산의 분배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복권열풍이 몰아칠수록 이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어서 걱정이다.

마지막으로 정부 몫에 관해 짚어둬야 할 점이 있다. 정부는 복권 판매액의 30%와 고액당첨자들의 세금을 거둬가 여러 개의 기금에 할당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금이라는 것은 예산상의 엄격한 심사를 피하기 위해 편의상 만들어진 것들이 많아 투명성에서 문제가 있고 정부가 운영하는 것이라 효율성도 높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더욱이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이 기금으로 몰려가게 됐는데 사용계획이나 제대로 잡혀 있는지 의문이다. 관계 기관들은 로또의 첫 1년간 판매액을 3천6백억원 정도로 잡았다. 정부나 기금에서도 대략 그에 맞춰 예산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두달반 만에 이미 판매액이 4천억원을 넘어섰으니 올해에는 예상보다 적어도 세배 이상의 돈이 정부 쪽으로 흘러가게 될 것 같다.

로또 문제는 당첨금 이월 횟수의 제한과 같은 미봉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어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정부에서 필요한 자금의 용도와 규모를 투명하고 엄격.정확하게 파악하되 규모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근거 법규를 분명하게 제정하고 난립해 있는 기존 복권들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로또 열풍에 관해 정부만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의 자세도 변해야 한다. 재미삼아 소액을 거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성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한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복권을 통째로 사놓고 보면 (복권해서는) 돈 잃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복권을 많이 살수록 돈 잃을 가능성은 그만큼 더 확실해진다."

노성태 경제연구소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