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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옹·베르뉘」로 명명|불르와르시 장경일 주교 기념주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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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의 서남쪽 3백킬로, 인구5천의 조용하고 아름다운「르와르」강변의 도시「샤토·뒤·르와르」시에서 가진 1주일동안의 「시메옹·프랑좌·베르뉘」 주교기념주간은 3윌9일 하오 3시「시메옹·베르뉘」 로 명명식으로 절정에 달했다. 이날 명명식은 「프랑스」측에선 「조엘·르를」불공보상, 「토니·로슈」지사, 「샤벵」 시장, 「슈발리에」 주교, 한국측에선 윤승국 주불한국대사관공사, 오요셉신부와 천여명의 이곳 시민과 16명의 한국 교포가 참석한 가운데 이곳 『자유의 광장』에서성대히 거행되었다.
이어 「르와르」 시립악대의 선도로 일행은 「솅겡 갈루아」교회로 가서 「슈발리에」 주교 집전으로추도 「미사」에 참석하고저녁에는 「샤토·위·르와르」 시장이베푼 「칵테일·파티」에 참가했다. 「베르뉘」로 명명식을 계기로 이 곳 시청에서는 1주일동안 「베르뉘」 주교 기념전시회가 열리어 수천시민들의발걸음을재촉하였다.
이전시회엔 한국지도로부터 갓쓴노인, 널뛰는장면, 줄다리기, 씨름판, 활쏘기, 상여등 한국의 여러가지 풍속을 보여주는 사진및 「베르뉘」 주교의대나무로된 주교장, 그가모친에게 보낸 편지, 서울옥중에서 송도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와 당시의 「카톨릭」 잡지등 고주교의 유품들이 수집되어있었다.
또한 이곳 청년회관에서 한국의 밤을갖고 한국영학·음악·춤을 보여주기도 했다.
「베르뉘」 주교는1814년 「샤토·뒤·르와르」 에서탄생, 「인도차이나」, 만주 등지서 오랫동안 선교생활을 거쳐 1856년 상제복을입고 서울에 몰래 입국, 10년동안복음전달을하여 서울에서만도 2천3백명의 신도와 9백명의 영세교인을 길러냈으나 1866년3월8일 서울에서 다른3명의 불인신부와함께 처형당했다. 그의 순교1백2년만에 작년10월 「로마」교황청은 「베르뉘」 신부를 복자위에 올려준바있다.

<파리=장덕상특파원>

<피로굳힌 유대>
서강대 김태관교수
남을 존경하는 정신이 메마른 현대에 고인을추모하여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베르뉘」 신부는 온갖고초와 박해를 무릅쓰고한국에서 순교한 분으로서 피로 맺어진 한불관계를 증명해주는 좋은「케이스」이기도하다.
지난10월 「로마」교황청에서 있었던 시복식때한국인유족의 좌석이 마련돼 있지않은것을본 「베르뉘」 신부의 후손들은 한국인유족들에게 자리를양보해준 「에피스드」가 있다. 이제는 한국도 완전한 민주주의국가로서 종교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수있기때문에 잘 실감이 나진않겠지만 당시온갖 박해와 탄압을 받았던 상황하에서 고군분투한 고신부의 영령은 길이 빛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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