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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축소 … 고액 연봉자 '13월의 급여' 얇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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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부가 고액 연봉자를 대상으로 사실상 증세에 나선다. 세율을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비과세·감면 제도를 대폭 정비하면서 ‘13월의 급여’로 불렸던 연말정산 소득공제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저축 장려를 위해 도입된 금융소득에 대한 비과세·감면 혜택도 당초 취지와 달리 여윳돈을 가진 사람이 혜택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 대폭 축소된다. 장기저축성보험·세금우대종합저축·조합예탁금이 그런 경우다. 분리과세 대상인 부동산투자펀드·선박투자펀드·해외자원개발펀드 역시 가입 요건이 강화된다.

 한국조세연구원은 26일 이 같은 방향의 내용을 담은 ‘과세 형평 제고를 위한 2013년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에 대한 제언’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이는 기재부가 의뢰한 용역 결과를 담은 것으로, 이날 조세연구원에서 열린 공청회를 통해 발표됐다. 기재부는 여기서 나온 제언을 8월 세법개정안에 대부분 반영할 방침이다.

 

 조세연구원은 근로자 소득공제는 소득 규모와 관계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험료·의료비·교육비·기부금을 포함한 소득세 특별공제와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고액 연봉자일수록 혜택이 과도하게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예를 들면 100만원까지 소득이 공제되는 보장성 보험의 경우 과세표준이 1000만원인 A씨는 세율 6%를 적용받아 6만원의 혜택을 받지만, 3억원 초과 B씨는 최고세율 38%가 적용돼 38만원의 혜택을 받는다. 소득 규모별 특별공제 합계를 보더라도 소득 1000만원 근로자는 170만원을 돌려받지만, 1억원 근로자의 혜택은 1143만원에 달했다. 김학수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공제를 통한 비과세·감면이 과도해 세수 손실뿐만 아니라 소득 재분배 기능도 저하시키고 있다”며 “소득 규모와 관계없이 혜택을 받는 세액공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세연구원의 제언에 따라 내년부터 소득공제가 축소되면 소득이 많은 근로자들에게는 사실상 증세여서 조세저항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주로 1억원이 넘는 고액 연봉자의 세 부담이 늘어나겠지만 과세 형평이 강조되면서 소득 규모 1억원 미만의 중산층 근로자에게도 여파가 미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세액이 올라가 결국 소득이 높은 근로자의 부담이 늘어나겠지만 국가 재정 확충을 위해 비과세·감면을 정비하는 방향이 맞다”고 평가했다. 반면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정부의 방향은 타당하지만, 소득이 낮은 근로자도 상징적으로 1000원이라도 세금을 내야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조세 원칙이 확립된다”고 지적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226개에 달하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대폭 정비하기로 한 것은 이 가운데 상당수는 당초 정책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 제도들을 과감하게 폐지하면 2017년까지 17조원 규모의 세수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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