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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 제47조에대한 대법 판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4일 대법원 형사부는 헌법상의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백지형법」이라 하여 그동안 논란의 대상이 돼었던 군형법 제47조는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려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군형법 제47조는『정당한 명령 또는 규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자가 이를 위반하거나 준수하지 아니한 때에는 2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하여, 범죄의 구성요건을명령이나 규칙에 일임하고 있다.
이 규정은 헌법 제10조의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명백히 위배하여 범죄구성요건을 명령이나 규칙에 백지 위임한 것으로 근대형법 사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형법 제10조1항은『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백히죄형법정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미국 헌법수정 제5조 및 수정 제14조 법의정당절차 조항의 영향을 받아 성립한 것으로, 이는 영미법의 원칙을 법제화한 것이며 오늘날 대륙 법국가에서도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죄형법정주의는 ①어떤 행위를 범죄로 하고 이를 범한자에 형벌을 과하기 위하여서는 미리 법률로써 죄형을 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②법률로써 정하는 경우에도 범죄구성요건을 명확히 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어떠한 행위가 범죄로 되는지를 미리알지못하게 되어 그 결과 부당한 처벌이 행하여지게 된다. 애매한 형벌법규의 존재는 국민의 자유를 부단히 위협하기 때문에 기본권 존중주의에 위배된다. ③구성요건을 명확하게 말하면 어떠한 행위든지 범죄로 정할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의의 요청에 적합하지 않으면안된다는 것을 필수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일반사법보다는 더 엄격하다는 평을 듣는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조차,『군형법 제47조가범죄규정을 대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단순히 정당한 명령에 위반이라는 포괄적 규정으로 형벌을 가할수 있게한 것은 헌법이 국민의 기본적 자유를 위해 금지하고 있는 형벌권의 백지위임』이라고 하여 위헌판결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요, 헌법 수호자의 지위에 있는 대법원이 이 정신을 모를리 없음에도 불구하고『특정사항에 대해 행정부의 명령으로 범죄정을 정할수 있으며, 따라서 군통수권을 담당한 기관이 통수에 필요한 범위내에서 범죄규정을 정할수 있도록한 군형법 제47조는 위헌일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촌탁하기에는 대법원은 군형법 제47조의 위헌선언으로 야기될 영향을 감안하여, 군정의 능률적인 운영을 위한 구체적 타당성을 찾기 위해 헌법의 해석을 그르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법원은 전임 대법원장 아래서 한건의 위헌판결도 하지 않도록 사법자제주의를 계속해왔다는설도 있었던 만큼, 신임 대법원장 취임 후에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소극주의의 지양이 요청돼 왔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일 이번 판결이, 대법원이 앞으로도 계속 사법자제주의를 고수하겠다는 의사표시라 한다면 이것은 서운한 일이 아닐수 없다.
위헌헌법심사권은 대법원의 가강 큰 권능이니 만큼 대법원은 보다 더 헌법의 수호에 과감하여야만 할 것으로 생각한다. 국가배상법에 관한 여러 지법판결이 배상상고되어 대법원에 계속중인 이때, 대법원은 보다 과감한 판결로써 헌법 해석을 통일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판결의 현실적 영향은 충분히 고려하되, 그 구체적인 대책은 법률개정에 의하여 행해지도록 국회에 맡겨 두어야만 할 것이다. 온 국민은 보다 과감한 위헌심사권의 행사를 대법원에 요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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