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사는 조모(82) 할머니의 한 달 수입은 주민센터 공공근로로 받는 20만원과 9만6000원의 기초노령연금이 전부다. 1인당 최저생계비(57만2000원)의 절반을 겨우 넘는다. 당장 월세 30만원도 감당할 수 없다. 노숙자인 장남은 행방불명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임에도 할머니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 만화 작업으로 한 달에 210여만원을 버는 막내아들 이모(46)씨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도 카드 값 등에 쪼들려 어머니 생활비를 댈 여유가 없다. 조 할머니는 “기초수급자마저 못 되면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라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선정할 때는 부양의무자인 자식이나 부모의 능력을 따진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며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소득·재산을 합한 월 소득인정액이 일정 기준 이하여야 한다. 하지만 조 할머니처럼 자식이 소득기준(월 211만원)을 초과해 돈을 벌어도 빚이 많거나 생활이 어려워 부모를 부양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가난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한 ‘비수급 빈곤층’은 약 117만 명이나 된다.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부정 수급자를 걸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동안 “빈곤층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됐다.
서울에선 다음 달부터 비수급 빈곤층이 생계비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서울시는 24일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를 7월부터 실시한다고 밝혔다.
서울에 산 지 6개월이 넘고(신청일 기준),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60% 이하인 시민 4만 명에게 생계비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1인 가구는 34만3301원, 4인 가구는 92만7839원 이하가 대상이다. 재산이 1억원을 초과(금융재산은 500만원)하거나 기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신청할 수 없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월 소득 1인 가구의 경우 383만원, 2인 가구 457만원에서 기존보다 100만원 이상 높아졌다. 특히 재산은 가구 수에 상관없이 5억원 이하다. 종전 기초생활수급자 기준 2억4300만원(1인 기준)보다 두 배 이상 완화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양의무자 재산은 사실상 거의 안 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형 기초보장수급자로 선정되면 기초생활수급자의 절반 수준의 생계급여를 받는다. 2인 가구의 경우 소득평가액 기준에 따라 월 11만~35만원까지 받는다.
여기에 기초생활수급자와 비슷한 수준의 교육급여와 출산한 아이 1명당 50만원의 해산급여, 1인당 75만원의 장례비용도 지급된다. 이를 위해 총 274억원의 예산이 사용된다. 시는 2018년까지 서울형 기초수급자를 19만 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김경호 서울시 복지건강실장은 “부양의무자 기준이 대폭 완화된 서울형 기초보장제도가 전국으로 확대돼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