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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설악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번 설악산의 등반사고는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바쁜 생활에 젖어서 신문도 제목만 훑어보는 버릇이 생긴 나도 이번 기사만은 한자 빼놓지 않고 읽어 내려간다. 요행히 그들이 등산「베테랑」들이고 장비도 우수하다는 것이 한가닥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 주고 있지만 기적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
눈사태는 동계 등산사고의 대종이다. 그렇다고 보면 이점에 무엇인가 소홀한 점이 없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라고 믿는다. 산에 오래 다니다 보면 산이 무섭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나도 산에 다닌지 이럭저럭 10년이 넘지만 누가 산에 가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저 가고 싶어서 간다고 대답할 정도로 산에는 정이 들었다.
그러나 너무 다정하게 굴다가 함부로 까불면 산은 노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산에 갈 때마다 외경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제 가구주가 된지도 오래된 몸이라 안전 제일주의를 내세우고 산책이나 다름없는 등산으로 그치는 일이 많지만 젊은 학생들이 험상궂게 생긴 바위에 무작정 덤비는 것을 보면 산을 두려워하여야 한다는 나 나름의 등산철학을 얘기하곤 한다. 산은 준엄하고 용서할 줄 모른다. 인간사회에는 잘못 하여도 더러 보아주는 일이 있지만 산에는 집행유예처분이 없다. 따지고 보면 규율이 산만큼 엄한데도 없다. 이 규율은 경험으로 얻어지기도 하지만 역시 등산은 하나의 과학이 아닌가 싶다. 눈사태가 어떤 경우에 일어나느냐에 관한 것은 자연과학이니 말이다. 여기에 등산은 단순한 도락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과연 우리는 산에서 많은 것을 체험하고 수양한다. 큰바위나 봉우리가 앞을 가렸을 때 그대로 넘을 것인지 옆으로 피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일 때 그것은 마치 인생항로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여러해 전에 국제연합의 사무총장을 지내다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하마슐드」는 등산에서 인생과 정치를 체득하였고 등산원리에 따라 국제연합을 운영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우리는 과연 산에서 인생과 사상을 배운다. <문인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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