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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이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외신은 29일 「바그다드」발신으로 충격적인 사진 한장을 전세계에 전송했다. 교수형에 대롱대롱 매달린 두구의 시체, 이들은 형무소의 처형장이 아니라, 「바그다드」시의 한광장에서 공개되었다. 밧줄에 매달린 품이라니, 설마 사람이랴 싶다. 인형인들 이처럼 잔혹한 풍경을 버려둘수는 없다.
「이라크」정부는 지난27일 유대인 9명을 포함한 15명에게 「이스라엘」의 간첩혐의로 사형을 선고했었다. 이들 사형인들은 「이라크」의 수도「바그다드」의 자유광장에서 수만 군중이 목격하는 가운데 처형됐다. 「바그다드」방송은 『군중들의 환호성이 충천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20세기의 문명사회에서 이루어진 엄연한 정치현실이다. 「이라크 」정부는 아직도 60명의 간첩이 더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스라엘」수상 「에슈콜」은 「이라크」정부의 판결을 「나찌행위」라고 분격했다. 「이스라일」군이 「요르단」강안에 집결하고 있다는 「뉴스」가 이와 동시에 타전되었다. 「이스라엘」측은 무슨 보복을 생각하고 있는것이 틀림없다. 「로마」교황-바오로-6세는 「이스라엘」측에 보복을 중지할 것을 호소했다.
「요르단」강은 이 원시적인 증악감을 사이에 두고 지금 『아차!』하는 순간에 놓여 있다. 어느 한편에서 방아쇠를 당기면 마치 「하무라비」법전시대의 원시적 보복을 방불하는 전쟁이 터질 것이다.
이것은 중동의「시시포스」적인 고난이 아닐수 없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eye for eye, tooth for tooth)(구약에서)하는 증악의, 증악의 끝도없는 연속이다. 『증오의 감정만큼 국민을 단결시키는것은 없다』고 「히틀러」는 갈파했었다. 「이라크」정부가 교수형을 시민에게 공개한것은 이성 아닌, 바로 그 원시적 감정에 불을 지르려는 의도이다. 「이스라엘」측이 보복을 다짐하는 것은 이 증악감의 「에스컬레이션」이다. 「이라크」는 또다시 「이스라엘」의 그 증악감을 앞지르는 증악감을 자극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끝도없이 상승될것이며 언젠가는 걷잡을수없이 폭발하고 말것이다.
중동의 불안을 해소하는 길은 바로 이「증악외교」와「증악정치」를 중지하는 길 뿐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들은 언제까지도 원시인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20세기의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보고있는 고소를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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