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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점 걸려고 25억 쓴 자립도 236등 청송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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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북 청송군이 최근 진보면 신촌리 군립 야송미술관 옆에 수묵화 `청량대운도`(위 사진·4600×670㎝) 한 점을 전시할 전용전시관을 지었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 한 점 때문에 25억원을 들여 전용 전시관을 짓고 표구하는 데만 8000만원을 들이는 자치단체가 있다. 재정자립도 9.07%로 전국 244개 지자체 가운데 236위인 경북 청송군의 얘기다.

 청송군은 최근 진보면 신촌리에 있는 군립 청송야송미술관(관장 이원좌) 옆에 건평 1062㎡(321평)짜리 근사한 2층 전시관을 새로 지었다. 폐교된 신촌초등학교를 개조해 2005년 문을 연 야송미술관 본건물보다 더 웅장한 전시관이다. 여기에 전시될 작품은 딱 한 점이다. 이 관장이 1992년에 완성한 가로 46m·세로 6.7m의 대형 작품인 ‘청량대운도’다. 화선지 전지 20장에 나눠 그린 이 그림은 전시 공간이 없어 수장고에 보관해 왔다.

 전시관 건물 벽면은 기차 객차 2량을 잇댄 것보다 길고 높이는 아파트 2층보다 더 높다. 작품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전시 벽면 맞은편에는 난간식 2층 관람대를 만들었다. 이 관장은 “그림 한 점에 맞춰 전시관을 지은 것은 세계 최초일 것”이라며 “영광이자 행운”이라고 말했다. 전용 전시관 건립 논의는 야송미술관 건립 이후 본격 시작됐다. 당시 배대윤 군수 등이 주축이 돼 초대형 그림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게 발단이었다. 이어 현직인 한동수 군수가 2009년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전용 전시관은 국비가 확보된 2011년 말 착공됐다.

전시관 내부(아래 사진)는 휘어진 전시 벽면과 맞은편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2층 관람대로 이루어져 있다. `청량대운도`는 이원좌 관장이 1992년 봉화 청량산의 구름 모습을 보고 그린 산수화다. 전시관은 작품표구와 설치가 끝나는 8월쯤 개관할 예정이다. 야송미술관은 이 관장의 호를 따 이름을 지었다. [청송=프리랜서 공정식]

 8월께 문을 열 전시관 건립에는 국비·지방비 25억원이 들어갔다. 표구를 거쳐 작품을 거는 데에도 8000만원이 들어간다. 이 작업은 공개입찰이 두 차례 유찰된 끝에 한 문화재 보수업체가 지난 14일 청송군과 계약을 맺었다. 청송군의 추산에 따르면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로도 연간 4억원이 들어간다. 반면 입장료는 받지 않기로 해 별도 수입원은 없다.

 청송군은 전시관 건립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상오 청송군 문화관광과장은 “지역 출신 화가가 그린 세계 최대 수묵화로 알려진 작품을 둘둘 말아 수장고에 방치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감상하도록 하는 게 낫다”며 “전시관이 관광 명소가 되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송군의회 이성우 의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을 활용해 관광사업을 하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산간벽지의 미술관에, 그것도 그림 한 점 보자고 얼마만큼 관광객이 올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 관장의 작품을 중심으로 운영 중인 야송미술관은 개관 이후 8년 동안 7만7000여 명이 관람했다. 하루 평균 27명이 안 된다는 얘기다.

 미술계 관계자도 의문을 나타냈다. 경북 지역의 한 미술품 컬렉터(52)는 “‘청량대운도’가 25억원을 들여 전용 전시관을 지을 가치가 있는 작품인지는 의문”이라며 “공무원들이 자기 돈이라면 이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청량대운도’가 세계 최대의 수묵화란 청송군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대만 화가 쉬원룽(許文融)은 2011년 길이 320m인 수묵화 ‘타이완풍물’을 중국 상하이에서 전시했다. 국내에서도 고 혜촌 김학수 화백이 한강 1300리를 40년간 350m 길이로 그렸고, 작품은 인제대에 보관돼 있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이 관장은 2004년께 청송군이 군립미술관 건립을 제안하자 자신의 작품을 상당수 기증하고 그때부터 별정직 6급의 미술관장을 맡고 있다. ‘청량대운도’는 1994년 서울 예술의전당에 전시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 ‘춘경’(133X66.5cm)은 2010년 한 경매에서 55만원에도 유찰된 적이 있다.

청송=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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