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치쇄신, 선언에 그쳐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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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가 18일 국회 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 의원 겸직 금지 등 쇄신 과제를 담은 의견서를 의결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합의해 지난 1월 설치한 특위의 첫 결실이다. 특위가 제시한 과제는 여러 상임위 소관의 법률에 흩어져 있다. 따라서 6월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져야 쇄신의 첫 걸음을 떼는 셈이다.

 입법화 과정에선 보완도 필요하다. 특위의 쇄신안이 놓치고 넘어간 점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특권으로 지적돼 온 의원연금을 완전 폐지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쇄신안은 19대 의원부터는 연금을 지급하지 않되, 기존 수급자들에 대해선 몇몇 단서 조항을 둔 채 유지시켰다. 또 의원들의 세비 삭감과 불체포 특권 포기에 대해선 말로만 떠들다 그냥 넘어갔다. 이는 지난해 여야가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겠다며 경쟁적으로 약속했던 사안 아니었나.

 이에 비해 국회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 의원들의 겸직 금지에 진전된 내용이 담긴 건 평가할 만하다. 쇄신안은 특히 국회 회의 방해죄를 신설, 국회 폭력을 형법보다 강도 높게 처벌할 수 있게 했다. 이대로라면 과거처럼 국회에서 해머를 휘두르거나 최루탄을 터트리는 의원은 금배지를 떼야 한다. 우리 정치권의 고질적인 후진국형 국회 폭력은 정치 불신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오죽하면 어린 학생들까지 국회가 몸싸움하는 곳이라느니, 격투기장이라느니 하며 비웃지 않나.

 그렇다면 이번만큼은 여야 모두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쇄신은 합의와 선언에 그쳐선 안 된다. 쇄신은 실천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반드시 6월 국회에서 입법화해야 한다. 우리 정치를 선진화하는 작업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그들의 쇄신 의지가 영 미더워 보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특위 쇄신안이 나온 그날부터 여야 의원들끼리 고소·고발을 벌이고 있지 않나. 이미 국회 정보위원장인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법제사법위원장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박 의원이 서 의원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간의 거래 의혹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이어 19일엔 박 의원이 서 의원을 검찰에 수사의뢰하겠다고 했다. 또 정보위 간사인 민주당 정청래 의원도 “서 의원이 봉투를 주더라”며 뇌물 공여로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한마디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이게 정치쇄신에 합의했다는 여야가 할 일인가. 국회는 온갖 대립되는 목소리와 이해관계를 거시적으로 절충하고 조정해줘야 하는 곳이다. 그러기 위해 모인 국민의 대표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사법 당국으로 달려간다면 국회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내팽개치는 셈이다. 정치인 스스로 고도의 정치행위를 기계적 사법 판단에 종속시키는 꼴이다. 이러고도 정치쇄신을 하겠다고 하니 어느 국민이 그 진정성을 믿어주겠나. 여야가 이 문제 하나 원만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쇄신은 쇼’라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