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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기 추방의 각본|중공의 「죄상보고」첫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중공은 작년10월13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중공당 제8기 중앙위원회총회확대회의에서 전중공국가주석겸 당부수석 유소기의 당적제명과 모든 공직으로부터의 추방을 결의함으로써 실각이 공식화했었다.
유에대한 제명처분과 공직추방결의는 총회전문심사소조에 의한 「배반자, 이적분자, 노동귀족 유소기의 죄상에관한 심사보고」에 바탕을 둔것인데 이번 그내용이 일지에 밝혀졌다.
심사보고에 나타난 유의죄상은 주로 1925, 27, 29년대의초기 중공당내 활동을배경으로하고있으며「문화혁명」에서 지탄을 받았던 ①공작조문제 ②사회주의교육운동논쟁 ③조정기정책 ④토지집단화 문제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어 주목된다.
심사보고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유소기는 지주가정의 출신으로 1921년 입당했을때 이미 부패, 반동의극에달한 지주배급,매판「부르좌」배급사상의 이단분자였다.
②반혁명양면파의 수법으로 배신과 당내반혁명수정주의집단의 총수가 되어 자본주의부활의 총대표이었다.
③1925년 중화전국총공회부위원장및 상해총공회책이란 직분을 사취한 유는 치병을 이유로투쟁을 두려워 장사로 도피했다. 장사의 군벌형사 염에게 체포된 유는 투항. 구명조건을받아들여 혁명을 배반했다.
④1927년 모택동이 호남성에서 농민무장봉기를 꾀했을때 호북성총공회비서장이었던 유는 노동운동을파괴, 일본침략군의 안전을 꾀했다.
⑤1927년 제 1차국공합작말기 유는 국민당에 가담, 당중앙노동운동소조장이란 직분을 맡아 무한에서 왕정위 진공박등과 통첩했다.
⑥1929년 유가 만주성위원회서기때에 동북(만주) 봉천에서 장학량에게 체포되어 당조직등을 자백함으로써 7개지부를 파괴했고 많은 동지들을 희생시켰다.
⑦1936년 박일파(부총리, 문혁에서 비판받아 실각)등 61명의 배반자들에게 반공혁명을 공표시켜 국민당에 투항케했다.
⑧1946넌 유소기는당시 주중미국대사 「스튜어트」와 결탁했다.
⑨1947년 유소기는 미국의첩자 왕광미와 결혼했다. 그녀는 북평의 미국 전략정보부가 연안에 파견한 특무 (스파이) 였다.
⑩1950년 처남 왕광기를 「홍콩」에파견, 미국중앙정보국(CIA)에 적지않은 가치있는 정보를 공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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