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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와 할머니-신용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감이 익었다야. 그 꺼칠하던 늙은 나무에서 저렇게 붉은 감이 익었다야. 감꽃이 피기 전엔 감 같은 것이 열릴 것 같지 않았는데, 내가 할머니 품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 저렇게 감이 익었다야.
(감나무는 우리 할아버지가 심었는데 그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다더라. 내가 자라서 감을 먹을 때쯤엔 감나무 둘레를 빙빙 돌면서 놀더란다. 할머니가 그랬다. 할머니는.)
나는 기뻐서 막 웃었다. 내가 할머니랑 둘이서 살고 있는 우리집 안마당에서 돌담 너머를 내다보며 감나무는 쓸쓸하게 자랐고, 저렇게 붉은 감이 익었다야.
(내가 두번째로 참맛을 알았을 때 할머니는 곶감 만들 감 껍질을 벗기면서 감나무 끝에 앉은 까마귀는 쫓을 생각도 않고, 감 껍질을 보고 쫓아드는 수탉을 사납게 쫓기만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온 가을을 나는 할머니 품에서 꿈을 꾸었고, 그 꿈이 깰 때쯤엔 감나무에 눈이라도 소복이 내려 있었으면 하고 가슴 설레었지만 저렇게 붉은 감만 흐드러지게 익었다야.
(감나무는 차차 여위기 시작했는데 그때쯤 할머니도 죽었다. 나는 할머니를 알았다. 어느날 밤 감나무에 걸려 있는 달을 보면서 그 작은 눈으로 눈물을 철철 흘리던 까닭을 할머니는.)

<그녀에게 「오린지」를>당선 소감-신용삼
우리는 어두운 길을 걷기를 좋아했었다. 광화문에서 왕십리쯤의 거리는 오히려 짧아서 불만이었다.
그녀, 희아는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그녀가 없는 어두운 다방의 구석자리에서 무거운 음악을 들으며 앉아 있다. 그녀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어른의 죽음은 어린아이에게 그렇게 슬플 수가 없더라고 이야기 해주어야지.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오린지」 (귤)를 큰 것으로 사주고 싶다.
그리고, 사실은 두렵다. 왜냐하면 아이들이라는 것은, 가끔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님의 건강을 빈다. 그리고 설익은 우리 <피에로> 동인들, 잘 지내는지.

<약력> ▲l947년 경남 거창 출생 ▲덕수상고 졸업 (66년)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 1년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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