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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등록금 예치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봄 집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모처럼의 가족 동반 나들이 일이 생겼다. 가장 좋아라고 재잘거리고 앞장서 뛰어갈 5학년 짜리가 어른스럽게도 『내일 일제고사 때문에 난 못가, 동생들이나 데리고 갔다 와』하는 볼 멘 소리와 함께 구석방 미닫이가 「쾅」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가야 옳으냐 그만둬야 옳으냐」로 망설였고, 다녀와서 그 이튿날까지도 무슨 죄 지은 사람 같이 쉬쉬하며 나들이 갔다온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우리 학부형들은 이러다가 중학입시제의 폐지 발표를 들었을 때 진심으로 반겼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 몰래 우리 부모들의 표정이 굳어지고 무언가 곰곰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공납금 선납자라야 추첨권을 준다니 말이다.
우열을 가리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경쟁은 확률에 의존한다는 것도 있을 법한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가장 치열한 경쟁을 추첨이란 완화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중학입시제의 폐지는 우리의 교육 과정에서 진일보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공납금선납제는 그 세부규정이야 어떻든, 그리고 성과야 어떻든 이번 제도개선을 본질적으로 왜 꼭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납금 선납」 운운은 이번 중학입시제 폐지가 제도 뿐만 아니라 교육에 임하는 자세의 개선이 아니고 다만 행정적 「아이디어」에 불과했지 않았나 적이 실망을 준다. 이는 상거래에서 예약금이나 소송에 있어 공탁금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어찌 당사자간 경쟁을 배제하는 이 마당에서 학부모의 재력 측정이란 예비시험과 같은 외부적인 재정보증이 필요하단 말인가. 좀 더 연구해 봐야할 문제다. 공납급 선납이 요청되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납금선납에 앞서 중학입학, 아니 중학3년간의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 문제이다. 영리를 하겠다고 중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외적기준 외에도 보다 타당성 있는 방안이 나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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