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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칙무역의 종장|밀수범 사라질 「이즈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대목을 노려 대한국밀수의 전초기지로 악명이 높았던 일본대마도의 「이즈하라」(암원)항에 이제는 밀수 쾌속정이 없어질둣하다.
대한밀수의 총지휘자급 으로 알려진 이정기(38·원래는 이정기였으나 개명)와 오종옥(45) 김의경(44)등 3명은 지난 22일 한국기자와는 처음으로 마주앉은 자리에서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밀수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동안 이항구에 묵고있던 밀수선 「금성」호와 「대양」호가 지난 14일 마지막 밀수품을 싣고 출항함으로써 과거 15년 동안 악명 높았던 대마도 밀수가 숨을 거두웠다.
「한국인무역업자」로 불려온 이정기등 3명은 그동안 창고에 잠겨놨던 일제화장품 양복지등 밀수품을 마지막 배에 실어보낸 뒤 세들었던 점방을 정리하고 대마도를 떠날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
각각 70만원 어치의 일제물품을 싣고 마지막 밀수선이 떠나던 날 「이즈하라」항구엔 세칭 「변칙무역」일본관헌은(대한밀수출을 이같이 부른다) 마지막장(장)을 지켜보기 위해 일본 세관관리와 입국관리소 관리들까지 전송하러 부두에 나서 대마도의 대한밀수의 특이성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이와 오도부두까지 나가 선원들에게 「다신 오욕의 밀수를 하지말자』면서 석별의 정을 나눴다. 떠나는 선원들은 일본관리들에게 『이젠 다시 못 만납니다. 그동안 폐가 많았읍니다』고 인사말을 하기도.
우리나라 남해와 가장 가까운 「이즈하라」항은 15년전인 지난 53년부터 밀수기지로 변장했다. 자유당말기와 민주당 정권땐 항구의 거리는 밀수 한국인과 밀수선원들로 밤낮없이 흥청대었다.
5·16직후 뜸했던 밀수는 62년 봄부터 다시 활기를 띠고 월평균 40척의 밀수특공선이 현해탄을 왕래했다.
이들은 「그린·백」(미본토화)을 가지고 무역선을 위장해서 들어와 선박대리업을 하는 오종옥에게 2만원씩의 수수료을 내고 상륙절차·외환절차·출항절차등을 맡기고 이정기·김의경 그리고 일본인업자에게 필요한 물자의 구입을 의뢰, 동경·대판·신호등지에서 물자를실어 4%가량의 수수료를 내고 한국에 갖다 팔았다. 한배가 가져오는 「달러」는 평균 2천「달러」.
그러기때문에 밀수를 주선해주는 이등 한국인업자가 이곳을 떠나면 특공선은 아예 밀수를 못한다. 「후꾸오까」(복강) 총영사관 강철구 영사가 대마도에 상주하면서 한국인업자의 설득을 시작, 6개월 동안의 유예기간을 주면 일본본토에서 사들인 물자를 모두 소비하고 선원등을 달래 대마도를 뜨게 하겠다고 두목급 3명의 서약서를 받았고, 이약속에 따라 이들 3명은 20일을 기해 변칙무역에서 완전히 손을 뗀것이다.
김의경은 15일 대판으로 이사했으며 오종옥은 「후꾸오까」에서 식당을 차리기로하여 가게도 팔아버렸다.
지난날의 밀수왕으로서 혁명재판소에 계류중 일본에 도피했던 이정기도 「후꾸오까」로 옮겨가 한국 토산품판매업을 차릴 계획이라고.
밀수경기로 흥청거리던 「이즈하라」는 밀수선이 떠나감으로써 타격이 크다. 「이즈하라」 정회(정회)가 21일 열려 대책을 의논했을 정도다. 「이즈하라」가 세관입국관리소등 방대한 관공서를 거느리게 된것엔 출입하는 배 95%가량이 한국밀 수선이었기 때문이다. 이 선박들 출입이 「올·스톱」된 이상 「이즈하라」는 무역항폐지의 직전에 놓이게되었다. 그러나 강영사의 말을 빌면 대마도 밀수가 끝장이 나자 요즘은 정식무역선에 의한 일본본주(대판·신호·하관·박다)밀수가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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