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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문학50년의 정리|출발은 민족주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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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문학60년에 비해 우리나라의 비평문학은 채50년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마저도사적인 정리가 체계화 안돼있는 실정. 지난20일 문인협회주최로 열린 문학평론가의「심포지엄」은『한국비평문학사의 정리』란 주제를 내세웠으나 10년단위로 가 시대의 풍토를 파악해보는 것으로 그쳤다.
문학평론가 백철박사(중앙대교수)의 회갑기념으로 마련한 이「심포지엄」에는 20년대부터 50년대까지 김팔봉 이헌구 곽종원 이어령 제씨가 분담, 주제를 발표했다.
초기의 비평문학을 소개한 금팔봉씨는 이땅에서 처음 비평문학이 시작한것은 1924년 창간한 월간지 「조선문남」이 나오면서부터라 전제하고 주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한「프롤레타리아」문학이었다고 밝혔다. 그것은 KAPF(프로예술동맹)가 조직된것과 같은 시기.
당시 식민지의 입장에서 일제에 저항하던 비평문학은「조선의 힘」「남」「혼」을 찾자는데 있었으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데 논점이 있었다. 평론가로서는 박영희 김팔봉백철등
목적의식을 앞세우는 문학관과 형식이 보다 본질적이어야한다는 민족주의문학파 사이에 논란을 벌였다.
1930년대의 문학비평은 KAPF를반대, 예술이 정치에 종속되느냐 병행하느냐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광주학생사건, 황주사변 및 일·중전쟁등이 잇달아, 탄압과 긴장의 도가니였으므로 문학에있어 사상성과 비판성이 강조되기 보다는 문학의 형식·문장·수사등의 문제에 치중했을뿐이다. KAPF가 쇠퇴한것은 자연적인 추세이며 최재서 김·.임의 주지주의문학이 드러나게 소개됐다고 이헌구씨는 말했다.
곽종원씨는 40연대, 특히 해방후를 좌·우문학이 가장 치열하게 뒤범벅이된 시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비평문학사에 넣을만한 것은 순수문학에 대한 김동리, 김?석의논쟁. 논쟁의 시기였으므로「아카데믹」한것이 없고 산만한 시기였다고 요약했다.
6·25이후를 간추려 소개한 이어령씨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저항, 역사의식등 제나름의 주관을제시, 역설적으로 이익이 됐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씨는 오늘날까지 비평대상이 본질적인 내용보다 피상적인 방법논에 치우쳐 있음을 지적했으며, 또 비평 문체를 창작적인면으로 발전시켜야한다고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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