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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나는 가끔 발바리를 데리고 산책하는 때가 있다. 이 발바리는 여기 저기서 냄새를 맡는 것이 나를 따라나온 유일한 즐거움인 것 같다.
그 발취물이 이성인 암캐의 오줌일 때는 사뭇 상쾌한 표정으로 나에개 뒤떨어진 줄도 모르고 냄새를 맡느라고 정신이 없다. 이에 반해서 그것이 동성인 수놈의 오줌일 때는 못 맡을 냄새를 맡았다는 듯이 상을 찌푸려 가면서 뒷발질로 흙을 덮어버린다. 그래도 모자라서 그 위에다 자기오줌을 싸놓고야 나를 쫓아온다. 사람의 후각도 그 사람이 사는 주위환경에 따라서는 발달하는 예민도가 다른 모양이다.
일본에 갔을 때 일이다. 그리 크지도 않은 「호텔」방에다 여장을 푼지 이틀되던날 저녁, 나는 안마사를 불렀다. 장님 안마사는 내방에 들어서자 마자 『손은 이웃나라 한국에서 오셨구만요』하며 내국적을 정확하게 맏혀낸다. 의아하게 생각한 나는 어떻게 해서 내말을 듣지도 않고, 내가 한국사람인 것을 알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의 답변이 재미있다. 「그것은 쉽습니다. 마늘냄새가 내 코를 찔렀으니까요. 또 기름냄새가 나면 중국사람, 노린내가 나면 서양사람이 틀림없어요.』
다음은 내 진찰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K학형이 자기 엄친을 모시고 진찰 받으러 왔다. 환자가 진찰실에 들어 서자마자 나는 K형에게 귓속말로 『보나마나 암일 것 같소!』하고 예언했다. 세밀한 진찰결과는 예언한 대로 암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K형은 『자네는 대학에서 오래 연구하더니 명실 공히 명의가 되었네! 환자를 진찰도 하지 않고 그렇게도 정확한 진단을 내리니 말이야! 그래, 그것이 영감이란 것이겠지!』하면서 감탄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의사인 나에게는 암에서 발산하는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한 악취 즉 「암취」로 쉽게 암의 확진을 내릴 수 있지만 K형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나를 명의라고 찬양하게 된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경♀ 재식식 진찰방법이 널리 애용되고 있다.
즉 사람의 오감인 시·청·촉·후·미각 중에서 환자의 아픈 곳을 보는 시진, 들어보는 청진, 만지거나 두들겨 보는 촉진(타진) 등이 정확한 진단에 필요 불가결한 방법으로 구사된다. 그러나 진단학 속에서 아직까지 후진이란 말은 발견할 수 없다. 개에 가까운 후각이 모든 사람에게 있다면 후진법이라는 새로운 항목이 시·청·촉진에 추가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희영<서울대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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