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등외 시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어쩌다가 서울에서 살게된지도 이미5년이 다 되어 간다. 3개월전까지만 해도 나는 성북동에 살면서 내 분수에는 넘치는 좋은 지역에 산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다. 그리다가 그성북동을 좇겨나게 되었다.
이유는 극히 단순하다. 성북동에서 그동안 살던 집은 실은 내집이 아니고 남의 집이었던 것이다. 그동안도 몇차례나 집을 비워달라는 독촉을 받긴 하였으나 심장을 든든히하여 버티어 왔는데 그이상 더 있겠다고 고집을 부릴수가 없게되었다.
그것은 집주인이 직접 들어 오게되었기 때문이다. 조물주가 나라는 인간을 만들때에 아예 돈과는 완전히 인연을 끊고 만들었다고 굳게 확신하고있는 내 주제에 날고 뛰는 사람들만이 사는 곳이 서울이라고 믿는 그 서울에 와서 비록 토옥삼간일망정 감히 내집을 장만해 보려는 생각은 5년전 대구역을떠날때에 그대구역 한모퉁이에 완전히 버리고왔던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인심좋은 서울 양반들의 덕택으로 남의 현실일망정 4년9개월이란 짧지않은 세월을 살아올수가 있었다는것은 나로서는 망외의 다행이었다고나할까?
하기야 서울 장안 4백수십만 인구가운데 그 반수이상이 자기집이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니 정치학을 공부하는 말배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다수에 따르고 「여인동」을 생활신조로하는 나로서는 내집없는 슬픔이란 느껴 본적이 없고, 오직 성북동같은 좋은곳에 살고 있다는 기쁨이 앞서기 마련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 그 성북동에서 쫓겨나서 장위동에 움막같은 집을 짓고 사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의 등내시민에서 등외시민으로 전락했다고 스스로생각하고 있다. 그이유는 이렇다.
첫째, 도로가 포장이되어있지않다. 그러므로 비가오면 걸어다닐수가없을 정도로 엉망이되고 그렇다고해서 날이개면 또갠대로 온통 흰먼지가 하늘을덮는 판이니 죽을지경이고 둘째로, 나는 등내시민보다 두배나비싼물을 사먹고있다. 그것은 우리동네 수도시설은 사설이기때문에 시직원이 매달 수도세를 받아가면 그다음날에는 시설주가 시설료를 징수하러온다. 이만큼 비싼물이니 다른물보다 좀더맛이라도 좋은가싶어서 매일아침 찬물을 마셔보기도하나 맛은 마찬가지인것같다.
세째로, 나는 내가 의심할 여지없이 등외시민이라는 사실을, 전화를 옮기기 위해서 전화국에 가서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사는 장위동 일대는 시설구역외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이 불능하다는 것이다. 인구4백수십만의 세계 제15위의 대도시 서울에 살면서 생활필수품이라고도할수가 있는 그전화를 쓸수가 없다는것은 확실히등내에는 들어갈수가 없는 시민이라는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지않은가! 그래서 나는 같은 서울에 살면서 또 버젓한 서울시민의 한사람이면서 9월28일을 경계로해서 그이전까지는 등내시민이던것이 일조에 등외시민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종환 <국민대학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