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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를 때 맞춰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숨 안가신 영동재해 현지>
영동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폭풍설과 해일은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는 수만 어민들에게 거의 치명상을 안겨주었다.
속초이북의 대소어항은 아야진·거진·대진할 것 없이 모두 홱 뒤집혀버렸다.
강풍에 몰린 거센 파도는 묵직한 배를 해변가에서 1백여미터까지 처 올리고 항구마다 대소어선 수십척을 포개놓았다.
그리고 수많은 어부와 어선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비통에 잠긴 어부들은 아예 술에 취해 있었고 흩어진 배조각을 주워 모으던 아낙네들은『배가 없어졌으니 어떻게 산단 말이요』라면서 땅을 쳤다.
항구의 장사꾼들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속초이북의 모든 어로시설이 눈 깜빡할 사이에 뿌리째 할퀴어 버린 것이다.
최초의 절망이 가시면서 조금씩 냉정을 되찾는 어민들은 그래도 부둣가에 나와 망치를 들고 부서진 뱃머리를 두들기고 있었지만 어떻게 절망을 디디고 일어설까 싶었다. 이들은 중앙의 구호대책에 귀를 솔깃하면서 모든 도움이「시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는 해변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바닷가까지 바싹 가꿔진 논밭은 모래밭으로 변모한 곳이 많았으며 거센 파도는 들판에 베어 누인 벼를 언덕기슭에 흐트러 모았다. 이 들판의 농민들은 짠물이 끼얹은 논가에 모여 이서방네는 3마지기, 김서방은 5마지기하면서 논의 면적에 따라 흐트러진 벼를 분배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27일의 간성 장날엔 쌀이 거의 나돌지 않았다. 조금씩 갖고 나온 시골 아주머니들도 값이 형성되지 않아 가져온 쌀을 선뜻 내놓지 못했다. 이번의 비바람은 이 지역의 나무와 전주를 마구 쓰러뜨리기도 했다. 홍천에서 관대리 인제 원통리 간성 거진에 이르는 길 양쪽의 전주는 거의 땅바닥에 누워있었다.
이 지역의 통신은 30일 상오까지도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국지적 피해로는 근래에 유례 없다는 이 참상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구호대책과 따뜻한 동포애가 필요하다고 현지 어업지도관과 행정관리들이 강조하고 있다. <박승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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