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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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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온천장에선 이상한 일이 자주 생긴다. 머리와 몸의 크기가 비슷한 마녀가 다스리는 곳이다. 온천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은 사람이 아니다. 일종의 신적 존재인 것. 온천의 정문에선 개구리가 손님을 맞이하고 지하에선 숯검댕이들이 물을 끓이기 위해 석탄을 나른다. 동화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근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우리를 낯선 판타지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가능하면, 아이의 시선으로 작품을 봐달라고 부탁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제 개인감독이 아니다. 어느새 일본 애니메이션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물이 되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이웃집 토토로'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일본 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도 알려졌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흔히 일본의 월트 디즈니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한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볼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때문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감독은 일본 전통의 세계를 애니메이션과 만나게 한다. 하야오의 작업에 애정을 가졌던 사람에겐, 새로운 매혹의 시작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은 치히로라는 소녀. 치히로의 식구들은 이사가던 중 길을 잘못들어 터널을 지나게 된다. 치히로는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돌아가자고 조르지만 엄마, 아빠는 아이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낯선 곳에 차려진 음식을 먹던 엄마 아빠는 돼지로 변해버리고 치히로는 하쿠라는 소년을 만난다. 마을 온천에서 일하게 된 치히로는 궂은 일을 하면서 엄마 아빠를 사람으로 돌아오게 할 방법을 찾는다.

한편, 온천장엔 밤이 되면 신들이 모여드는데 이름을 '센'으로 바꾼 치히로는 가마할아범, 린, 등과 어울려 생활한다. 치히로는 자신을 돌봐준 하쿠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그를 돕기 위해 길을 떠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엔 재미난 캐릭터들이 많다. 손동작 하나로 모든 사물을 조종하는 마녀, 가면 쓴 귀신, 다리가 여럿 달린 할아범 등. 작품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보다 이상하게 생긴 캐릭터들을 발견하는 게 더 재미있을 정도다. 여기선 오물신, 무 모양의 신 등 진기한 구경거리가 많은데 이 캐릭터를 이해하려면 좀더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자연의 일부분을 신적 존재로 숭상하는 일본 전통 신앙의 흔적이다.

일본에선 애니미즘이 신앙 형태로 남아있다. '신도(神道)'라는 토착신앙이 그것이다. 신도는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샤머니즘 성격이 짙은 종교다. 다른 종교와 달리 일정한 체계가 없으며 자연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을 전한다. 원래 샤머니즘에 근접해있던 신도는 이후 일본 천황에 대한 신격화 작업과 맞물리면서 본래 성격이 변질되었다. 하지만 일본 고유의 토착신앙으로 남아 아직까지 힘을 발휘하는 중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신도의 그림자를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은 낡은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셀 애니메이션에 주력했던 인물답게 그는 여전히 셀 작업에 골몰하고 있으며 디지털 애니는 군데군데 부분적으로만 사용한다. 게다가 작품은 앞서 언급했듯 일본의 토착신앙과 연결되어 있어 자칫 지루하게 보일수 있다. 그럼에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감동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소녀의 모험담, 아이들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붕괴된 가족의 복구 등의 이야기를 솜씨좋게 붙여놓는다. 아기자기한 판타지까지 곁들이면서 작품의 결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하야오 감독은 "이제 열살이 되려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한때 열살이었던 당신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라고 말한다.

낡고 오래된 방식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작품을 만나는 이들을 작은 목소리로 설득하고 위로하면서 변함없는 '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사소하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랜 세월을 거쳐 이제, 거장의 경지에 올라섰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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