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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로테르담 필 내한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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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9일 성남아트센터에서 협연하고 있는 장 기앙 케라스(왼쪽)와 지휘자 야닉 네제-세갱.

9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내한 공연을 펼친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지휘자 야닉 네제-세갱(38)은 요즘 가장 ‘뜨거운’ 지휘자다. 2008년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에 취임한 그는 지난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했으며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지휘자이기도 하다.

 그는 첫 곡으로 네덜란드 출신 작곡가 바게나르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서곡을 선택했다.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1868~1916)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관현악곡이다. 로테르담필은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를 연상시키는 다채로운 색채를 현에 담아냈다. 적당하게 걸린 장력과 날렵하게 비상해가는 곡의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날 협연자인 첼리스트 장 기앙 케라스(46)는 섬세함이 돋보이는 첼리스트다. 그래서 이날 도전한 쇼스타코비치와의 궁합에선 기대보단 우려가 앞섰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케라스는 첼로 협주곡 1번을 높은 수준의 집중력과 자연스러운 여유로 소화해냈다. 앙코르로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 1번 중 서곡(Prelude)은 포근한 프레이징(짧은 악절을 끊는 방법)과 탐미적인 음색으로 담백하게 담아냈다.

 2부는 로테르담필이 최근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발표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오페라 반주에 강한 지휘자답게 네제-세갱은 1악장에서 템포를 끌어 당겼으나 현이 따라가지 못해 앙상블이 흐트러졌다. 빠른 템포 때문에 2악장은 밋밋했지만 3악장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엇박으로 느껴질 정도로 미묘한 아티큘레이션(연속되는 선율을 작은 단위로 구분하는 것)과 악절마다 아첼레란도(accelerando·점점 빠르게)가 느껴질 정도로 정교한 지휘력을 선보였다. 그가 왜 오페라 무대에서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휘대에 올라서지 않으면 지휘봉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신인 네제-세갱은 풍부하면서도 절제 있는 무대를 빚어냈다. 그러면서 4악장에선 큰 몸짓으로 비통한 감정을 이끌어냈다.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와 악단, 청중 모두가 몰입한 탓에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소리는 음악이 돼야 하고, 음악은 침묵이 돼야 한다는 세르주 첼리비다케(루마니아 태생 지휘자, 1912~1996)의 지론에 따르자면 아마도 이 때가 이번 음악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최윤구(음악평론가·국민대 강사)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최윤구 음악평론가): 지휘자와 독주자 모두 요즘 왜 가장 핫한 아티스트인지를 보여준 쾌연(快演).

★★★★☆(강기헌 기자): 차이콥스키의 마지막을 온몸으로 그려낸 지휘자. 음악보다 더 큰 울림이 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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