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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단풍틈에 탐스런 머루·다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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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머루덩굴은 빨갛고 다래덩굴은 거무티티한 푸른빛으로 단풍이 든다.
다래는 이미 물러 덩굴을 흔들기만하면 후두둑 가랑잎위에 떨어진다.
머루를 한알 입에 넣으면 단맛과 새콤한 맛에 혓바닥이 짜릿하다.
산의 향기가 열매에 응결한 그런 맛일까.
『머루는 오대산이 제일이요.』깊은 골에서 머루를 따던 주계숙여인(42)은 오대산의 머루가 대관령의 머루보다 더 맛이 있다고 자랑했다. 송이가 크고 알이 굵고 서리를 일찍 맞아서 단맛이 더 난다고 설명이 푸짐하다.
오대산의 머루따기는 벌써 한달전부터 시작했지만 추석전후가 제때. 무서리를 맞으면 잎은 떨어지고 덩굴엔 까만 머루송이만이 주렁주렁 남는다.
머루 따기는 산골아낙네의 유일한 돈벌이. 주여인은 올가을에 머루를 따서 2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딸성운양(14)과 둘이서 하루 5관이상을 따는데 값으로 치면 한사람이 4백50원꼴이 된다는것.
주여인은 14년을 오대산입구에서 살면서 해마다 머루와 다래를 따러 산을 찾는다고 했다.
어느 골엔 어느 덩굴이 있고 어느 덩굴의 머루가 더 달고, 이런 것들을 훤히 알고있다고했다.『정말 오대산을 잘 아는 사람은 저뿐일거예요.』그러나 가을의 머루따기는 이제 가을의 낭만만은 아니다. 몇해전부터 머루술이 유행하고 머루포도주가 생기면서「메이커」들이 봄부터 머루수집자금을 뿌리기 시작했다는것.
업자들은 여름이 되면 머루1관에 70원꼴로 돈을 빌려준다. 이돈을 쓰면 가을에 1관에 1백50원하는데도 70원으로쳐서 머루로 갚아야한다.
『올해 돈3천원 썼다가 기겁을 했구먼! 팔았으면 7, 8천원은 될만한 머루를 3천원값에 바쳤으니.』주여인은 못내 아쉬워했다.
이제는「머루도 가을의 서정을 떠나서 치열한 돈벌이 경쟁이 되고 말았다. 머루가 익어간다 싶으면 머루자금을 쓴사람들이 온산을 뒤지기 시작한단다.
다래는 덩굴에 매달려있지만 덩굴에 매달린 머루는 보기가 힘들다. 오대산계곡을 15리나 올라가서야 간신히 찾았다.
다래랑 머루랑 먹고-이젠 이런시는 없다. 다래랑 머루랑 따팔아 새옷을 사입는 것이 산골처녀의 바람이 됐다.
칡덩굴도 돈, 다래도 돈, 머루도 돈-. 머루따는 여인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한두송이 남는 것을 까마귀와 까치가 쪼아먹는 그런 가을이 깊어간다.
글 전경욱기자
사진 최해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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