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학연금도 이혼 시 재산분할" 첫 판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사립학교 교사였던 A씨(61)는 1984년 B씨(58·여)와 결혼했다. A씨는 교사로 일하고 B씨는 의류업체를 운영하면서 20년 넘게 부부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대학 진학에 실패한 아들 문제로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A씨는 지난해 따로 방을 얻어 집을 나간 뒤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 다 이혼을 원하고 있어 이혼청구는 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재산분할 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이 갈렸다. A씨는 2007년 2월 퇴직한 뒤 매달 받고 있는 282만여원의 사학연금은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B씨는 연금에 대해서도 자신의 기여가 인정된다고 맞섰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부장 김귀옥)는 “사학연금도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며 “A씨가 앞으로 받는 연금 중 절반을 매월 말일 B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학연금은 후불임금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데다 퇴직금으로 한번에 받으면 재산분할 대상이 되는데 연금이라고 나눠줄 수 없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이 지급하는 사학연금도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다. 사학연금 재산분할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다만 공무원연금에 대해 대법원은 97년 “이혼소송에서 앞으로 받게 되는 공무원 퇴직연금은 원고의 여명(남은 수명)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분할액이 달라질 수 있어 분할대상 재산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한 판례가 있다.

 하지만 이런 법원의 판례는 2011년 가정법원이 공무원연금도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고 판결한 이후 바뀌고 있다. 지난 3월 서울고법에서도 같은 취지의 판결이 나왔고 이번에 사학연금에 대해서도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최명호 변호사는 “연금도 부부의 결혼생활 중 형성된 재산의 일부로 보는 취지의 판결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법에 이혼 시 연금 분할을 규정하고 있는 국민연금을 제외하고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모두 재산분할이 가능하다는 판례가 생기게 됐다. 국민연금은 월평균 수급액이 31만원에 불과하지만 공무원연금(월 210만원)과 사학연금(월 259만원)은 수급액이 200만~300만원대로 훨씬 많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임채웅 변호사는 “수명이 길어지면서 자산 몇 억원보다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는 몇 백만원 연금의 가치가 더 커지고 있다”며 “황혼이혼을 당하게 되는 연금 수급자들은 노후계획을 통째로 다시 세워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