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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례허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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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년 추석은 유사 이래의 호경기로 5천원대 상품이 매진되고 상품권뿐만 아니라 은행「쿠퐁」조차도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한다.
중추가절인 추석을 맞아 햅쌀로 술과 송편을 빚어 선산을 찾아 성묘하며 조상의 덕을 추모 하면서 추수를 감사하는 것은 우리 고래로 내려오는 순풍미속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추석을 추수감사절 적인 의미로 공휴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작금의 추석은 광산에 성묘하고 추수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상납하고 교환하는 시기로 되고 만 것 같다.
추석만이 아니라「크리스머스」다, 신정이다, 구정이다 하여 인사를 차리느라고 빚을 지면서 까지 선물경쟁에 나서고 있는 작금의 명절경기는 이상경기라고 하겠다. 명절을 맞아 서로가 따뜻한 인사를 나누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으나 분수를 넘는 선물을 하고 그것이 경쟁적으로 될 때 사치성소비만 조장하고 제2경제에 역행하는 풍조로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명절의 선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행사나 소비에서 분수를 지키지 않고 허장성세 하는 것이 한국사람의 특색이라고 할 것이다. 분수를 넘게 관혼상제를 화려하게 지내고 이를 위하여 진빛 때문에 부조전래의 농토를 처분하는 농가는 부지기수다. 관혼상제의 간소화야말로 농촌을 구하는 첩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조전래의 선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선산에 조상을 모시는 것은 또 이해할 수 있으나 도시 거주민까지 조상의 산소를 위하여 수십리 내지 수백리의 먼 산을 사서 장사지내는 것은 허례허식이 아닐지 모르겠다. 서울의 공동묘지는 점점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이미 초만원을 이루고 새로 만든 공동묘지도 그 면적이 좁아져 정부는 화장을 장려하고 유택 면적도 제한하리라고 한다.
국회보사위와 보사부는「매장등 묘지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①분묘의 점유면적을 제한하고 단지화 하기로 했으며 ②기설묘지도 필요한 경우에는 허가를 취소하여 이전케 하고③기설묘지의 이전에는 국가가 비용을 보상하도록 하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유댁에 뺏기는 땅을 활용하면 연9억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이 법개정은 조상숭배에 따른 관습제도 때문에 심한 반발이 있을 것이 예상되므로 선거가 임박한 경우에는 국회에서 통과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묘지는 풍수설과「샤머니즘」에 얽힌 미신적 요소도 없지 않고 이에 따라 낭비되는 비용과 국토도 많은 즉 주거지에 가깝고 공원화 할 수 있는 유택단지를 만들어 성묘에도 편리하고 시민의 휴식처로도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국립묘지를 참배한 사람이면이것이 조상을 받들지 않는 소이라고는 못할 것이다. 외국의 국립묘지뿐만 아니라 공동묘지가 공원화 하여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살벌한 한국의 공동묘지를 생각하게 되고 공동묘지의 미화와 시민생활에의 친근화를 생각하게 된다. 김철수 <서울대 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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