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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은 지금 북핵 '초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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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휴전선은 서울 북방 60km 지점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가. 북한 핵무기는 한국보다 미국을 더 위협할 것인가.

워싱턴에서는 거의 매일 북한 관련 토론회와 의회 청문회가 열린다. 이라크전쟁 준비로 바쁜 부시 정부와 의회가 이렇게 한국문제에 매달리기는 아마도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중진의원들은 이라크 사태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니 당장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라고 정부에 요구한다.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의 생각도 그렇다.

북한이 핵무기개발의 마지막 수순을 밟으면서, 또는 그러는 척하면서 미국이 영변의 핵시설을 공격할 기미가 보이면 남한과 일본의 미군시설에 선제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러서 미국이 느끼는 사태의 심각성은 절정이다.

워싱턴에 비하면 서울은 참으로 천하태평이다.

워싱턴을 방문한 노무현 당선자 특사의 한 사람은 미국 관리들에게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붕괴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핵무기를 갖는 편이 낫다는 말을 했다(월 스트리트 저널 보도).

그런 사람이 노무현 정부의 요직에 앉으면 북한 핵위협에 대한 한.미 정책공조가 어떻게 될까 걱정이다.

지난 6일 오후 중앙일보와 워싱턴포스트 공동 주최로 워싱턴포스트 9층 회의실에서 열린, 북한 핵을 포함한 한반도문제에 관한 정책포럼에 미 정부와 의회, 언론이 보인 비상한 관심은 이라크전쟁 직전의 상황에서도 북한 핵이 차지하는 비중을 잘 반영하는 것이었다.

국방부의 제 2인자 폴 울포위츠 부장관이 국무부의 제임스 켈리 동아태 담당 차관보와 함께 토론에 적극 참가했다. 그는 전날 저녁 도널드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회장이 자택에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위해 베푼 만찬에도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과 함께 참석했다.

연일 이라크와 북한문제 청문회를 열고 있는 상원 외교위원회의 리처드 루거 위원장과 존 록펠러 의원도 끝까지 토론에 참여했다. 공영방송 C-SPAN은 3시간의 토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중계했다.

북한문제라면 울포위츠 부장관은 부시 행정부 안에서도 가장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다.

그는 토론회 사회자 리처드 스미스 뉴스위크 회장으로부터 북한이 넘어서는 안되는 어떤 '금지선(red line)'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북한은 이미 몇개의 금지선을 넘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사다리를 높이 올라가서 한칸씩 내려올 때마다 보상을 하라고 요구하지만 미국은 나쁜 행위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

미국측 참가자들은 세개의 그룹으로 분류된다. 행정부 고위관리들과 상원 외교위원회 의원들, 과거에 한반도정책 수립에 참가했던 전문가들이다.

행정부 사람들은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의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상원의원들은 시기를 놓치지 말고 대화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대화를 서두르지 않으면 북한은 몇주 안에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널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에 북한을 두번 다녀온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는 행정부에 중요한 조언을 하는데도 듣지를 않는다고 불평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한국측 참가자가 두 사람의 상원의원들에게 하는 질문의 형식으로 북한 핵문제의 3단계 해결방안이 처음으로 거론됐다.

미 정부가 성명이나 서신으로 북한체제의 안전을 보장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그 보장을 지지하고, 미국 의회가 불가침 결의안을 채택하는 3중의 보장조치다.

루거 위원장은 불가침선언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이 주도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록펠러 의원은 적절한 준비가 있으면 상원이 그런 결의안을 채택할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고 대답했다.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도널드 자고리아 교수는 록펠러 의원의 발언을 주목했다.

지난주부터 북한 핵은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갔다. 북한이 핵물질을 테러조직이나 그들을 지원하는 국가에 수출할 가능성이 심각한 걱정으로 추가됐다. 북한의 핵위협이 협상용이 아니라 핵무기를 갖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정말 시간이 없어 보인다. 미국은 즉각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고, 끝나는 정부나 새로 들어서는 정부나 한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미국과 진지한 입장조율을 서둘러야 한다.

김영희 대기자 <워싱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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