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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뒤의 성공이 상표 닉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리처드·닉슨<공화·대통령후보>
온갖 고난과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인물. 정력, 야심, 노력은 어린시절부터 그의「트레이드·마크」(상표). 소년시절부터 그는 아버지의 채소 가게에서 일했으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고학을 했다. 대학시절 그는 축구선수로서 활약했으며 졸업시 성적은 반에서 2위. 그는 계속 장학금을 얻어「듀크」대학 법학부를 마쳤는데 여기서의 졸업시 성적은 3등. 재학중 학생회 회장으로 활약했으며 그는 이때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재질을 단련시켰다.
그는 대도시의 법률사무소에 취직, 사회인으로서의 첫발을 디뎠으나 실패. 그의 능력이 인정된 것은 해군에서였으며 해군소령으로 제대했다.
1946년「캘리포니아」에서 하원에 출마, 당선됨으로써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34세에 하원의원이 된 그는 하원 비미행위위의 위원으로 자질을 인정받았다. 38세에 상원의원이 되고 40세에 부통령이 되었다.
60년 대통령선거와 62년「캘」주지사선거에 연패, 고난의 시절을 겪었으나 또다시 이를 극복하고 55세에 대통령후보에 피선, 신념과 끈기의 사나이임을 입증했다.
스피로·애그뉴<공화·부통령후보>
가난한 이민의 아들로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민주당원의 지지로 정치에 성공한 공화당원.「그리스」계 이민의 후손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주지사가 된 기록을 세웠으며 세인의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 부통령후보가 됨으로써 비로소「클로스·업」된 행운아.
1920년대 대공황기에 소년시절을 보낸 그는 어려운 가계를 돕기 위해 갖은 직업을 다 가졌다. 대학까지 줄곧 고학으로 계속한 그는 처음 화학을 전공했으나 나중 법과로 과를 바꾸어 야학에서 고학으로 공부했다.
2차대전 중에는 중대장으로서「유럽」전선에서 참전.
사회복지 문제 전문가인 그는 57년「발티모어」시 지역개발위원회 위원이 된 것을 시발점으로 정치생활을 시작, 67년「메릴랜드] 주지사가 됨으로써 비로소 일반의 관심을 모은 말하자면 정치 초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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