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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힌 「체코」자유화의 앞날|소련군 기습점령과 유혈항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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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가 짖어도 대상은 전진한다』고 「두브체크」는 말했다. 어떤 장애가 있어도 「체코」자유화노선을 밀고나가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두브체크」는 개가 요란하게 짖는데 그치지 않고 달러들어 대상들의 허벅다리를 물어뜯을줄은 몰랐다. 자유화라는 이름의 낙타를 타고가던 대상(체코)은 지금 사나운 개(소련)에 물려 일단전진을 중단한 셈이다. 「탱크」와「미그」기를 앞세우고 「체코」를 기습한 소련은 예상대로「두브체코」일파의 개혁파「체코」지도자들을 체포 또는 연금해놓고 친소·보수파의 정권복귀의 공작을 하고있다.
소련이 「두브체코」일파를 친소·보수노선으로 개종시켜 지난 8개월동안 추진해온 개혁에 종지부를 찍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단숨에 소뿔빼는 식으로 「두브체크」일파를 거세해버리고 자유화의 물결에 밀려났던 「노보트니」세력을 당장들여 앉힐것인지는 아직 분명치않다.

<「폴란드」경우처럼 협상성립 가능성도 >
「두브체코」·「스보보다」대통령, 「체르니크」수상등의 행방이 묘연한채 「체코」공산당중앙위가 소집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소련은 후자, 다시말하면 56년「헝가리」서의 방식을 쓰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합법정권이 서면 물러가겠다』는 말투는 괴뢰정권을 세울 계획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소련군대의 기습, 침입까지는「헝가리」사태와 꼭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련은 개혁파, 또는 반소적인 지도층에 사전통고없이 군대를 일단 진주 시켜놓고는 그것이 그들의 요청에 의한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직은 소련과 「두브체코」일파 사이에 56년 「폴란드」사태 때 「고물카」와 「흐루시초프」가 성공적으로 벌인 극적인 협상같은게 성립될 가능성이 전혀없는 것으로 속단해 버릴수도없다.
소련이 「헝가리」방식을 택하는 경우 사태는 극적으로 반전되어 「노보트니」파의 「왕정복고」를 의미하고 「폴란드」방식을 택하면 「두브체코」의 양보, 자유화노선의 일시적인 후퇴를 뜻하게된다.
소련이 「체코」무력침공을 결경하기까지의 경위는 두가지 각도에서 생각할 수있다. 첫째는 소련자체의「이니셔티브」에의 한 것이다. 「치에르나 나드티수」와 「브라티슬라바」 담판서 「체코」자유화에 효과적인 「브레티크」를 걸지못한 소련은 8월초에 이미 무력개입의 배짱을 굳혔는지도 모른다.

<바르샤바기구 약화|동독·폴란드 불안>
그동안 시일을 끈것은 「코시긴」을 비롯한 「크렘린」안의 온건파의 반대때문일수도 있고 「헝가리」「불가리아」에 공동원정을 설득하는데 힘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동독 「폴란드」와는 달리 「헝가리」「불가리아」는 소련의 슬하에 남아있는 공산국가로서 「다음차례의 체코」로 물망에 올라있는 처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동독과 「폴란드」에 의한 「이니셔티브」를 상상할수있다.「브라티슬라바」회담결과 「체코」의 자유화는 소련으로부터 한정적인 승인을 받은 것 처럼 전해졌다.
그러나 소련군부와 「크렘린」안의 강경파가 즉각반발하여 「브라티슬라바」회담결과의 재고가 「크렘린」서 치열하게 논의되고 있을때 동독과 「폴란드」가 군사행동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을수도있다. 「체코」의 자유화·서방진출, 특히 서독접근에 가장 불안을 느낀것이 동독·「폴란드」였기 때문이다. 「체코」의 서방접근은 소련으로 보더라도「바르샤바」 조약 기구와「코메콘」의 약화는 물론 그의 대서방방위망에 치명적인 구멍이 뚫리는 것이 된다.

<영·불·이 공산당 군사행동 일제규탄>
「체코」사태엔 「체코」의 운명 이상이 걸려있다는 「뉴요크·타임즈」의 논평대로 소련의 군사적인 「테러」행위는 세계사적인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첫째 공산권분열의 악화다. 소련의 행동을 지지하는 것은 서방측서는 「벨기에」「칠레」등 서너나라의 공산당에 불과하고 불·이·영의 공산당은 소련의 행동을 불법으로 규탄하고있다. 11월「모스크바」공산당대회는 유산되고 「루마니아」의 반발여하에 따라 「바르샤바」동맹과 「코메콘」의 약화도 있을수있다
다음은 동서관계의 긴장, 냉전부활의 위험성이다. 세계여론, 국제관계의 원칙을 무시한 소련의「체코」침공으로 동서화해 「무드」가 당분간 후퇴할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수도들이 긴장하고, 「유엔」안보리가 소집됐지만 서방측에 의한 효과적인 개입의방도가 없음은 「헝가리」사태때와 마찬가지다.
피로물든 「프라하」에 「스탈린」주의가 부활될것인지는 좀더 두고봐야겠지만 자유화는 이미 국민들에게 널리 뿌리를 내린만큼 「두브체크」일파가 착수한 일이 완전한 「제로」로 돌아갈수는 없을 것이다.<김영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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