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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벼락'이 행복시작 아니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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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액 당첨자는 괴로워…'.

전국이 로또 열풍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로또복권은 6일 하루 동안 무려 4백37억원어치나 팔렸고 이번주 1등 당첨금은 7백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누구나 '인생역전'을 꿈꾸며 사는 복권이지만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은 억세게 운좋은 극소수일 뿐이다.그나마 그 행운은 자칫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로또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미국에선 그런 겨우가 적지 않다. 복권의 역사가 짧은 국내에서도 이런저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고액 당첨자가 여럿 생겨나고 있다.

지난달 13일 로또복권에 당첨돼 당첨금 65억7천만원(세후 51억2천만원)을 거머쥔 J씨는 당첨 후 살이 5kg이나 빠졌다.

그는 한 방송사의 제작진과 만나 "돈이 생기니까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아졌다. 누가 와서 괴롭힐 것이라고 주변에서 우려도 많이 한다"며 최근의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는 당첨금을 받는 자리에서 연 기자회견 후 신원이 노출되자 '대인기피증'에 가까울 정도로 주변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돈을 많이 벌었으니 좀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J씨는 다니던 전기 관련 하청업체를 그만두고 찾아오는 사람을 피해 낮에는 집을 비운 뒤 밤에 귀가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5일부터는 가족들을 집에 남겨둔 채 "나를 찾지 마라. 며칠간 시골에 내려가 있겠다"며 아예 종적을 감췄다.

그는 이웃 주민 상당수가 당첨 사실을 알아버리자 현재 살고 있는 24평형 아파트에서 인근 지역의 48평형 정도 아파트로 이사갈 계획이다.

J씨가 사는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선 "주변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이사갔다. 일본으로 출국했다"는 등의 근거없는 괴소문도 꼬리를 물고 있다. 또 언론사에는 "J씨가 흉기에 찔려 죽었다. 폭력배들이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는 등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J씨가 범죄 대상이 될 우려가 커지자 관할 남양주경찰서는 최근 J씨의 집을 방문,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경찰서로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J씨뿐이 아니다. 지금까지 보훈복지공단이 발행하는 플러스플러스복권을 산 뒤 25억~40억원의 당첨금을 탄 사람은 모두 7명. 최근 40억원에 당첨된 金모(34.무직.경기도 안산시)씨를 비롯한 이들은 하나같이 집을 옮겼고 휴대전화 번호도 바꿨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고액 당첨자들은 신분 노출을 꺼려 언론의 인터뷰에 거의 응하지 않고 당첨금으로 지급받은 통장을 손에 쥐면 즉시 사무실을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은행들도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당첨자의 연락처 등을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복권발행기관에서는 복권판매를 늘리기 위해 고액 당첨자의 동의를 받아 기자회견을 주선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첨자들의 신원이 노출돼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인터넷에는 보안이 유지되지 않을 경우 고소하겠다고 은행측을 협박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로또 당첨시 행동지침 10계명'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남양주=전익진.주정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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