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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대회의 연혁과기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전당대회는 민주당이34회, 공화당이 20회를 겪었다. 민주당은 1832년5월에, 공화당은 1856년6월에 각각 제1차회의를 열었다. 이때까지는 당간부회가 후보를 지명하는 관례를 따라 왔으나 통신·교통이 발달한 관계와 당간부회에 의한 지명은「보스」지배적인 색채가 짙다는 여론때문에 전당대회에서 지명하게 된것이다.
1924년 민주당대통령지명대회에서는 무려 1백3회나 투표를 거쳐서야 겨우 후보자가 결정된 일도있다. 이는 1836년이래 대의원3분의2의 지지를 얻어야한다는 규칙에 기인하는것이었다.
1936년엔 민주당은 공화당과 함께 3분의2 득표규정을 과반수로 변경 1964년엔 민주·공화
양당이 단l회투표에서후보자를선출지명했다.
1946년공화당대회에서는 대회전에 압도적으로 우세한것으로 생각되던 「토머스·듀이」가 거의무명의「웬덜·윌키」에게 6회째투표에서 참패한 기록도 있다.
「듀이」는당시「뉴요크」주지방검사로서 명성이전국에 알려진 사람이었으나 「윌키」는 「인디애나」주출신소장실업가로서대회2개월전까지만하더라도 거의 알려지지않은존재였다. 「갤럽」조사에의하면 그해5월「듀이」67%, 「윌키」3%로 나타났고 대회직전엔「듀이」47%, 「윌키」29%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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