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든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인왕산줄기의 한성성벽을 뒤로끼고 남향으로 높다랗게 자리잡아 전망이 시원하고 양지바른 6백평남짓한 터. 서대문구홍파동2의4. 여기 향나무30여그루에 둘러싸인 복판에 한국기와지붕과 중국식 빨간 벽돌담으로된 1백평가량되는 단층집이 들어앉아있다. 아무도 이집의 유래를 모르는채 역사의 이끼와 더불어 늙어갔고, 사람들은 제멋대로 이집을 두동강으로 만들어 반을 양옥으로 만들어 썼다.
아무도 이집이 민족적저항의 섬광의 중심이었고, 누구보다도 한국민족의 비운을 서러워했던 열혈한「어니스트·T·베델」, 배열이 살던 집인줄은 몰랐다.
그것을 알게되기는 불과 며칠전의 일. 그것도 몹시 우연히 밝혀졌던 것이다. 본보의「런던」특파원의「베델」유가족 면담기사가 보도(25일자)되었을 때 배열이 매우 능숙한 솜씨로자세하게 서울집을그린「스케치」도 소개되었었다. 이것을보고 그집에 살고있는 본보독자이창희여사가 전에 시아버지 안동원씨로부터 들은이야기를 더듬어서 본사에 알려준것이다.
70여년전의 대한매일신보 사옥이자「베델」의 주택이었던 이집은「베델」자신이 지은것.울창한향나무들도 그때 그가 심은 것들이다.
이제「런던」에 살아남은 그의유가족도 찾아내고 뒤늦게 나마 그를 칭송하는 건국훈장대통령상도 그들에게전달된다. 그러나 그의 옛집은 앞으로 누구의 손에 넘어가서 어떻게 모습이 바뀌어질지.
『나는 죽지마는 바라건대 신보는 길이 살려 한국동포를 구원하라』-이것이 옥고를치른 끝에 병든 그가 남긴 유언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고, 우리에게 저항의 길을 알려 주었고, 우리에게 용기를 안겨주다 37세의 젊은나이로우리땅에묻혔다. 그러나 그의 옛집은 아직 남아있다. 그가 뿌린 씨도 향나무들처럼 무성하게 자라고있는 것이다. 이 새로 발견된 유서깊은 집을 우리는 영구히 보존해야만 할것같다. 그것이. 우리가 그에게 바칠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