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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깃발 든 레슬링, 패자부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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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국제레슬링연맹 관계자들이 30일(한국시간) 열린 IOC 집행위원회에서 레슬링이 2020 올림픽 정식 종목 최종 후보로 선정되자 기뻐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AP=뉴시스]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레슬링이 올림픽 정식종목에 재진입할 것을 확신한다.”

 한명우(57) 대한레슬링협회 부회장은 30일 “결국 레슬링이 2020년 올림픽 정식종목에 포함될 것이다. 경쟁 종목인 야구-소프트볼과 스쿼시는 각각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30일(한국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IOC 집행위원회를 열어 레슬링을 야구-소프트볼, 스쿼시와 함께 정식종목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세 종목은 정식종목의 남은 한 자리를 두고 오는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경쟁한다. 우슈·롤러스포츠·스포츠클라이밍·웨이크보드·가라테 등 5개 종목은 탈락이 확정됐다.

 레슬링은 이날 1차 투표에서 자크 로게(71) IOC 위원장을 제외한 14명의 집행위원 중 8명의 지지를 받아 가장 먼저 살아남았다. 한 부회장은 “ 레슬링은 지난 2월 퇴출 후보가 된 직후 나흘 만에 라파엘 마티니티(스위스)를 국제레슬링연맹(FILA) 회장직에서 몰아냈다. 또 지난 19일 네나드 라로비치(세르비아) 직무대행을 회장으로 선임했다”며 “레슬링이 강도 높은 개혁을 시도하자 IOC 위원들도 마음을 바꿨다. 빠르게 변화의 움직임을 보인 레슬링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반면 함께 정식종목 후보로 살아남은 야구-소프트볼, 스쿼시는 IOC 위원들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야구와 소프트볼이 연합해 올림픽 재진입을 노리고 있지만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시즌 중 선수를 올림픽에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흥행을 점점 중요하게 생각하는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기 어렵다. 스쿼시는 유럽에서 인기가 높지만 테니스와 비슷한 점이 많아 정식종목이 되기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대올림픽부터 근대올림픽까지 올림픽 역사와 함께한 레슬링은 뒤늦게 IOC의 방침을 따랐다. 마티니티를 몰아낸 것부터 그랬다. FILA 회장으로서 2002년부터 11년간 독재를 한 마티니티는 대회 때마다 IOC 위원들과 충돌했고, 결국 레슬링 퇴출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한 부회장은 “마티니티는 ‘레슬링의 히틀러’다. 부인과 딸·사위까지 FILA에 취직시켜 개인 기업처럼 운영했다. 런던 올림픽에서는 심판 배정을 맘대로 바꿔 공정성을 헤쳤다. IOC 위원들이 마티니티를 몰아내기 위해 레슬링을 퇴출시키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티니티가 만들었던 세트제 경기 방식도 지난 19일 FILA 특별 총회를 통해 9년 만에 사라졌다. 총점제로 전환돼 3분 2회전 경기를 치르면 후반 역전승을 노릴 수 있기 때문에 경기의 재미를 끌어올릴 수 있다. 또 FILA는 여성 부회장직을 신설하고, 여자 자유형 체급을 4개에서 6개로 늘리는 등 여자 레슬링 외연도 확대할 방침이다. 남자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은 각각 7개 체급에서 6개로 줄어든다.

 올림픽 잔류 희망을 키운 레슬링계는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방대두(59) 런던 올림픽 레슬링 대표팀 감독은 “이제 겨우 후배들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9월 총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열(52) 대한레슬링협회 사무국장도 “밤잠을 설쳤다. 1차 목표를 이뤄 다행이다. 레슬링인과 모든 국민의 도움을 받아 기회를 다시 얻었다”며 웃었다.

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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