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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생에서 온 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제 저희들은 새 사람이 되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작업이 아무리 힘들고 그 손바닥이 터져 피가 흐르더라도 열심히 맡은 일을 하고 있읍니다.』김건일군(23)이 4일 그를 검거한 성동 경찰서 폭력 담당 구자춘경위(49)와 최기달 형사에게 보내온 편지의 끝맺음이다.
지난달 22일 제주도 어승생 공사장으로 떠나기 전 김군은 흥인동사창가를 주름잡던 건일파 깡패의 두목이었다. 조직 A급 폭력배로「리스트」에 올랐던 김군 등 일당 3명은 윤락행위 방지법, 사기혐의로 경찰에 검거됐었다. 사창가의 기둥서방으로「펨프」노릇을 하면서 흥인동 창녀와 포주들을 등 쳐온 이들은 걸핏하면「사이다」병을 깨들고 유리조각으로 배를 째는 등 행패를 부리기가 일쑤였다.
『어제의 깡패가 내일의 보람있는 생활을 하자면 고통과 난관쯤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만 밝은 우리들의 암날이 약속될 것이 틀림없기에 하루하루를 참고 견디어 나갑니다.』편지라고는 평생 처음 써본다는 김군은 깨끗한 글씨로 작업이 끝나면 같이 간 김영철군(18·건일파 부두목)과 이병호군(17·행동대원)등 셋이서 서로 달래며 앞으로의 새로운 인생출발의 행로를 계획한다고도 했다.
이들 건설대원이 일하고 있는 곳은 한라산 중턱(해발1천미터)아흔 아홉 골의 어승생. 너무 더운 낮에 비해 밤은 또 너무 추워 따뜻한 아랫목 생각이 간절하다고 했다. 김군은 지난달 24일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난생 처음으로 환영이라는 것을 받아보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도 했다.
그는 건설의 역군이 된 이젠 그 누가 우리보고 깡패라고 하겠느냐고 되물으면서 새 사람이 되어 웃는 얼굴로 만나 뵈겠다고 다짐하면서 자주 격려와 위문편지를 보내달라고 부탁도 했다.
구 경위는 김군의 편지를 받고 경찰관 생활 20년에 처음으로 직업의 보람을 느꼈다면서 곧 주머니를 털어 금일봉과 격려편지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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