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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다이어트 자꾸 실패한다는 40대 초반 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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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 들여 1년 헬스권 등록
1주일만 열심히 하고는 시들
의지 약한 내가 너무 한심

Q 중학교 3학년 아들을 하나 둔 40대 초반의 주부입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시간적 여유가 생겨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려는 거였지요. 실행에 옮기기 위해 올 4월 거금을 들여 피트니스센터 1년 회원권을 등록했습니다. 당초 생각은 매일 한 시간씩 러닝머신을 하고 밥은 반 공기만 먹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잘 지켰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뜸하게 가다 5월부터는 돈만 날리고 있습니다. 그사이 식욕은 늘어 오히려 살이 더 쪘고요. 난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하는 자괴감에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만 느껴집니다. 의기소침해져 사람 만나기도 싫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누구나 뇌 안에 청개구리 심보
결심 굳을수록 오히려 지키기 어려워
쉬운 목표로 시작하세요

윤대현 교수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A 작심 3일은 루저(실패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뇌 안엔 청개구리 심보가 있어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고 하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저항하고 튕겨 나갑니다.

 ‘이번 봄에는 꼭 금연할 거야, 내일부터 확 끊어야지’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시간씩 운동할 거야’ ‘술은 일주일에 한 번만 마실 거야’ ‘하루 두 번만 먹고 체중을 10㎏ 이상 뺄 거야’ 등 늘 단호한 시나리오를 마련합니다. 그러나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박 희망을 안고 쓴 시나리오가 이처럼 무기력하게 흥행에 실패하고 나면 ‘난 안 돼’란 생각에 자신감이 점점 사라집니다.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는 시나리오는 없을까요. 클리닉에서 라이프스타일 관련 상담을 하다 보면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예컨대 운동을 권하면 ‘내일부터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없다’며 무기력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전자의 결과가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계획이 거창할수록 실패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특히 작심삼일의 심리적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다음은 한 의과대학 4학년 강의 때 학생들에게 던졌던 질문입니다.

다음 중 건강한 행동을 증진시키는 것과 가장 관계가 먼 것부터 순서대로 나열하면?

①‘당신 이대로 담배 피우면 암에 걸려 곧 죽는다’라는 열정적인 의사의 권고

②‘이대로 죽겠다’며 의사 권고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환자

③‘알겠다’며 순응하는 환자

④‘담배 끊는 것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겸연쩍게 질문을 던지는 소심한 의사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정답은 1<3<2<4입니다.

 1번과 같은 강한 권유를 직면적 요법이라고 합니다. 과거 의사들이 많이 쓰던 방법인데, 행동 변화에 대한 동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담배를 더 피우게 만듭니다. 이성적으론 끊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도 감성이 같이 따라 움직여 주지 않으면 행동 변화는 일어나지 않거나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강한 권유는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줄 변화에 오히려 브레이크를 겁니다. 아무리 좋은 얘기도 반복해서 들으면 잔소리로 느껴져 짜증이 나는 것처럼, 스스로에 대한 다짐 역시 너무 강성 일변도로 자신을 채찍질하면 반동으로 더 튕겨 나가게 됩니다.

 3번은 의사 입장에선 흡족한 대답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변화의 의지 없이 그냥 의사의 비위 맞추기용 응대일 가능성이 큽니다. 의사는 ‘예스’를 잘하는 환자가 예쁘죠. 그러나 언어적 긍정과 실제 행동은 반대로 가기 일쑤입니다.

 2번은 의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진상 환자처럼 보이지만 저항을 좋은 에너지로 돌릴 수만 있다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도 사람인지라 열심히 이야기했는데도 환자가 삐딱하게 반응하면 ‘내 전문가적 권위에 도전하는가’라는 생각에 환자를 소홀히 대하기 쉽습니다. 암환자 생존율과 연관한 심리적 특성 연구를 봐도 착하고 순응하는 환자보다 의사와 싸우고 까칠한 모습을 보인 환자가 더 오래 살았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싸우는 것 자체가 생존율을 높인 건 아니지만 속으로 삭이는 감정 반응보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우리 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듯합니다.

 성공한 영업사원 가운데 ‘어떻게 사람을 설득했을까’ 싶을 정도로 내성적인 사람이 있는데 4번이 그런 경우입니다. 우리 감성은 청개구리 같아서 아무리 좋은 것도 누가 하라고 밀어붙이면 오히려 반항하게 됩니다. 반면 소심한 듯 보여도 상대방 의견을 조심스레 묻는 질문은 변화에 대한 저항감을 줄이고 자발적인 동기 부여를 해주는 최고의 상담 기술입니다. 내 안의 저항감은 꼭 부정적인 게 아닙니다. 정상적인 반응이고 에너지입니다. 저항감 뒤편의 심리적 요인들을 잘 해결해 이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건강한 행동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저항감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작업이 동기 부여 과정입니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지려면 동기 부여가 중요한데, 이때 가장 중요한 심리 요인이 자기효능감(self-efficacy)입니다. 자기효능감이란 특정한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나 기대감을 말합니다.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초기 성공 경험’입니다. 성공 가능성이 10%에 불과한 거창한 계획보다 성공 가능성이 99.99%인 쉬운 계획부터 시작해 차츰 목표를 높여가는 게 작심삼일을 벗어날 수 있는 전략이라는 말입니다.

 매일 운동하겠다고 욕심 내는 江南通新 독자분들, 의지는 정말 훌륭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 5분이라도 좋으니 100% 실행할 자신이 있는 운동량을 목표로 잡으라고요. 그다음 운동량을 조금씩 늘리는 겁니다.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게 성공적인 건강습관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합니다.

 더불어 주변의 지지와 칭찬도 매우 중요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죠. 주변에서 초기 성공 경험을 지지해주면 자기효능감을 높여줍니다. 날씬해진 다음 모두를 놀래주겠다라는 생각보단 리액션 좋은 지인한테 내 계획을 많이 알리는 게 좋습니다. 칭찬이란 피드백을 많이 받는 게 일견 유치해 보여도 매우 효과적이니까요.

 No pain, No gain. 다시 말해 고통 없이는 성취도 없다는 말은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위한 생활습관 바꾸기란 측면에서는 틀린 말입니다. 여유 있게 달성할 수 있는 작은 계획과 주변의 격려가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윤대현 교수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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