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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좀 빠졌다고 아베노믹스 실패 운운하는 건 성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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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알다가도 모르는 게 경제라 했나. 붕 뜬 주가가 버블인지 아닌지, 떨어지는 주가가 끝 모를 추락인지 단순 조정인지, 좀 나아졌다는 경기가 진짜인지 허상인지…. 아베노믹스에 춤추는 일본 경제가 딱 그렇다.

 돈을 왕창 풀고, 재정을 쏟아부어 디플레이션을 끝내겠다는 아베노믹스. 그 설계자이자 주창자인 하마다 고이치(濱田宏一·77)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디플레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27일 도쿄에서 본지 인터뷰에 응한 그는 최근의 증시 불안에 대해 “조정일 뿐”이라며 “주가가 정말 더 떨어진다고 본다면 당장 공매도에 나설 자신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또 엔저에 대한 한국의 비판을 “주의하고 있다”면서도 “변동환율제에선 자기 나라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된다”고 했다.

더 떨어진다고 본다면 공매도 해라

아베 일본 총리의 경제자문역인 하마다 예일대 명예교수는 27일 인터뷰에서 “일본 경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로버트 길훌리 프리랜서 작가]▷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돈을 찍어낸다고 디플레에서 벗어날 수 있나.

 “디플레는 화폐현상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해결할 수 있다. 매년 2~3%의 완만한 인플레를 유도해 착실한 성장궤도에 진입하는 게 목표다.” 이는 통화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시각과 같다. 다만 아베노믹스는 프리드먼 이론과는 이질적인 케인스주의(재정을 통한 정부개입)를 병행하고 있다.

 - 프리드먼과 케인스의 처방을 어떻게 함께 쓸 수 있나.

 “가장 효과적인 것은 돈을 푸는 금융정책이다. 재정은 뒤에서 등을 떠밀어주는 정도의 수단으로 보면 된다.”

 - 아베노믹스 반년을 평가한다면.

 “예상보다 매우 잘 추진돼 왔다. 대규모 금융완화를 정치 리더가 수용했다는 게 다행이다. 며칠 새 주가가 좀 떨어졌지만 방향성으로 본다면 경제는 매우 좋아졌다. 각 분야에서 경기회복의 싹이 움트고 있다. 아르바이트 시급도 올랐고, 생산과 소비도 좋아졌다. 늘 죽겠다던 택시기사들도 조금 나아졌다고 말한다.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 증시가 불안해지자 아베노믹스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죽죽 오르던 주가가 잠시 조정받은 것 가지고…. 과민반응이다. 이 정도로 ‘아베노믹스 종언’ 운운하는 이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주식을 공매도하면 될 것 아닌가. 아베 정부가 들어선 뒤 주가가 얼마나 올랐나. 여기서 10%쯤 빠진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중요한 건 자산가치 상승이 소득과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공매도란 향후 주가 하락을 예상해 실제 가지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미리 팔아 치운 뒤 나중에 싼값에 현물을 사들여 차익을 챙기는 방법이다. 주가가 폭락할수록 이익이 커진다. 하마다는 국채 폭락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그럼 공매도하라”고 응수했다.

아베 정권 들어서고 경제회복 싹 움터

 - 장기금리 상승에 따른 국채 폭락 위기론이 커졌다.

 “모두들 그걸 걱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기업이 투자 결정을 하는 데 고려하는 실질금리는 오르지 않는다. 기대인플레율이 상당히 올랐으므로 명목금리가 올라도 실질금리는 하락한다. 장기금리 오르는 걸 걱정하거나, 국채 폭락 운운할 이유가 없다. 일본 국채 금리가 여전히 낮은 건(국채 값 강세) 그만큼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는다는 의미다.

 물론 국채를 많이 지닌 은행의 경영엔 손실이 생길 거다. 그래서 은행 주변의 경제평론가들이 시끄럽게 구는 듯하다. 또 명목금리가 오르면 국채를 신규 발행할 때의 부담은 커진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장래의 물가상승률인 기대인플레율이 5월에 1.9%대로 높아졌다. 연초(0.5%대)보다 3배 이상 높아진 셈이다. 아베노믹스 덕분에 인플레 심리가 무르익고 있다는 근거로 사용되는 수치다.

 - 그렇다고 인플레를 환영할 수는 없지 않나.

 “물론 인플레 자체는 좋은 일이 아니다. 대중에겐 감기와 같다.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기름값이 올라 고기잡이 배를 못 띄우는 어민들의 고통도 듣고 있다. 서민에 주름이 가는 건 사실이다. 어떻게 모두에게 다 좋을 수 있나. 인플레가 심해지면 일본은행이 막아야 하는데, 그동안 디플레로 몰고 온 능력을 감안하면 인플레 억제력은 믿어도 된다.”

 - 통화증발에 따른 하이퍼 인플레의 가능성은.

 “제로라 봐도 된다. 하이퍼 인플레는 패전·내란·혁명기에만 일어난다.”

 - 은행대출이 확확 늘지 않고 있다. 돈이 안 도는 것 아닌가.

 “은행의 예대 통계만 보면 그렇긴 하다. 하지만 은행신용이 안 늘었으니 금융정책이 안 먹힌다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다. 민간에 대한 신용공급 효과는 은행만 내는 게 아니다. 자산시장이 활기를 띠면 그 영향이 누군가의 지갑으로든 가게 돼 있다. 그들이 투자도 하고 소비도 하는 것이다. 국민경제에 대한 그 같은 플러스 효과를 무시하고 은행 대출 타령만 해선 곤란하다.”

 - 출구전략을 놓고 미국과 일본 사이에 온도차가 나타날 가능성은.

 “미국이 긴축을 고려한다는 건 경기가 좋아졌다는 얘기 아닌가. 그럼 일본에도 희소식이다. 그런데 출구, 출구 하는데 다들 무슨 뜻으로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급격한 긴축으로 되돌아가는 건 곤란하다. 출구전략을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 입구에 들어서기도 싫어하는 이들 아니겠나.”

인플레 심해지면 일본은행 나설 것

 - 일본이 통화전쟁을 촉발한다고 비판이 많다.

 “모든 나라가 경쟁적으로 자국통화를 절하해 세계적인 인플레를 초래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은 모양인데, 잘못된 인식이다. 고정환율제 시대에나 통하는 얘기다. 통화의 경쟁적 절하로 지금 당장 세계적인 인플레에 돌입하지는 않는다. 변동환율제에선 자기 나라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레세 페어’(자유방임주의)가 원칙이다. 또 일본이 통화전쟁을 벌인다고 하는데, 그럼 몇 년 전까지 한국이 취한 (고환율) 정책은 무엇이었나. 그때 원화의 절하로 일본이 고통받지 않았나.”

 이 답변 직후 하마다는 “한·일 경제협력으로 양국이 얻을 이익이 크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양국의 경제적 호혜관계가 훼손돼선 안 된다고도 했다.

 - 한국에 대해 조언한다면.

 “원화가치가 너무 비싸졌다면 (금리인하 등) 금융완화 정책을 펴 낮추면 된다.”

 한편 그는 엔화 환율의 예상치에 대해선 정책에 간여하는 입장이라는 이유로 말을 아꼈다. 그는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선 달러당 95~100엔을 예상한 바 있다.

도쿄=남윤호 논설위원

◆하마다 고이치(77)=도쿄대 법학과 출신의 경제학자.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대 교수로 일하다 1986년 예일대로 옮긴 뒤 지금까지 미국인 부인과 함께 뉴헤이븐에서 살고 있다. 아베 신조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 설립한 ‘아베 펠로’에 선발된 것을 계기로 아베 총리와 가까워졌다. 10여 년 전부터 일본은 과감한 금융완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아베 총리가 가장 신뢰하는 경제자문역으로 유명하다. 내각관방참여라는 자리를 맡아 두 달에 한 번씩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문에 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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