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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반대" … 프랑스 68혁명 이후 최대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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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앵발리드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해 시위하고 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경찰에게 돌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했다. 지난달 26일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뒤 야권과 가톨릭 주도의 반대 목소리가 커졌다. [파리 로이터=뉴시스]

“어린이에게 엄마와 아빠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26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옛 퇴역 군인 요양소) 앞 광장에 울려퍼진 동성 결혼 합법화 반대 시위자들의 구호다. 파리 외곽 세 곳에서 도심으로 가두행진을 벌인 뒤 한데 모인 시위대는 광장을 가득 메웠다. 경찰은 15만 명으로 추산했고, 주최 측은 100만 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저녁 무렵에는 폭력 시위로 돌변했다. 극우 단체 회원 등이 경찰에 돌을 던졌고, 폭동 진압 경찰은 최루탄을 쏜 뒤 과격 시위자들을 붙잡아 격리시켰다. AFP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내무부는 96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중에 집권당인 사회당 당사에 난입한 19명도 포함됐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18일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동성 부부의 자녀 입양도 허용했다. 사회당은 지난달 의회에서 야당의 반대를 물리치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이 의결되기 전에도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의 시위가 두 차례 있었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68혁명’(1968년 5월에 사회 변혁을 요구하며 학생과 노조가 벌인 총파업 투쟁) 이후 강도와 규모 면에서 최대의 시위 사태로 묘사했다.

 전날에도 샹젤리제 거리에서 수백 명이 시위를 벌이다 50여 명이 체포됐다. 동성 결혼 합법화에 반대해온 극우 성향의 역사학자 도미니크 베네(78)는 21일 노트르담 사원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위자들은 동성 결혼에 대한 법적 인정보다는 자녀 입양을 문제삼고 있다. “아이에게 두 명의 엄마 또는 두 명의 아빠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에 대한 관용 차원을 넘어선 사회 존립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다. 프랑스 정부는 동성 부부에게 대리모를 통한 출산도 허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에선 70% 이상이 동성 부부의 입양과 대리모 출산에 반대하고 있다. 이 일로 20% 중반대의 빈약한 지지율에 시달리고 있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위상은 더욱 추락했다.

 영국에서도 동성 결혼 문제가 정권에 상처를 입혔다. 지난 21일 정부가 발의한 합법화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됐지만 집권당인 보수당에서 133명(전체 소속 의원 303명)이 반란표를 던졌다. 오히려 야당인 노동당이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이 법안은 상원을 통과하면 2015년부터 효력이 생긴다. 선데이 텔레그래프는 26일 상원에서 일부 의원이 조직적으로 저지할 움직임을 보여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상원에서 법안을 거부해도 정부가 법 발효를 강행할 수는 있지만 정치적 부담 때문에 실제로 그런 사례는 영국 의회 역사에서 세 차례밖에 없었다.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14개국이다. 그중 2001년 최초로 법을 만든 네덜란드를 포함해 9개국이 유럽에 있다. 미국은 하와이 등 일부 주에서만 허용된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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