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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공약품이다"경비원속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국가기밀에 속하는 통화개혁뒤에는 숨겨진 일화도많다. 「원」으로의 통화개혁이 태동하기는 61년, 군사혁명직후부터.
관계한사람은 당시 최고회의재경위원 유원식준장을비롯, 재무장관 천병규씨등 몇사람뿐이었고 다른최고위원이나 한은총재 민병도씨, 부총재 홍용희씨등도 전연몰랐었다고 전해진다.

<안터졌나…냄새맡아>
「원」화개혁의 구체적인 작업은 그해2월부터 착수되었다. 관계법령·규정등을 마련하기위해 극소수의 실무자들은 비밀보전을위한 각서를 써놓고 가족에게까지 비밀을 지키면서 작업을진행했으나 그때는 이미 새로운 지폐를 영국「토머스·데·라루」회사에 발주하고난 다음이었다.
당시 실무자로 개혁에 참가한 현F은행이사 P씨는 낮에는 은행에나가고 밤에는 모기관에가서 작업을 했으며 며칠씩 계속해서 일을 할때는 결근한다든지 출장이란 명목으로 자리를 비웠다고 술회한다. 새통화인 「원」은 영국에서 극비리에 부산군용부두창고로 운반해놓고 6월7일 기관원 13명과 은행감독원에서 검사경험이많은 13명등 모두 26명이 8일아침 부산으로내려가 제주도·묵호·울릉도등 선편수송은 8일밤, 철도편은 9일아침 모두현지로 출발시켰다. 이래서 9일밤의 전격적인 개혁조치발표에이어 10일아침 구권과의 교환을 시작할수있었다. 모든 수송편에 무장군인들이 호위를 담당했음은 물론이다.
부산창고에 「원」화를 보관하고있는동안도 보안문제때문에 상당히 신경을 썼었던것은 그때 경호를 담당한 헌병들에게 전부 화공약품이니만큼 잘못하면 터진다고 위협, 경비군인이 화공약품이 터진것 같다고 보고하면 담당자는 냄새맡는 시늉까지도 했다는 「에피소드」가있다.

<윌급장이들은 돈없어>
이때 교환되지않은 40억원은 미회수로 국고에 귀속되었다.
흥미있던것은 돈이 편재해 있을것이라는 예상이 틀렸다는것과 봉급생활자는 고작 2, 3천원을 예입한데반해 빈민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이 백만단위로 돈을 가져오는가하면 비참한 생활을 하는것같은 60세지난 노인들이 수만원, 많으면 수백만원씩 들고오더라는 은행실무자들의 고백.
우리나라는 해방후 두차례에 1천대1의 호칭가격 절하를했지만 세계기록은 어떤가? 2차대전후인 46년 「헝가리」의 40양의1(40양「뺑게」=1「후린트」)이 단연 세계기록이다. 40양은 4밑에 0이 29개가 붙는 천문학적숫자이니 「라이터」 돌하나를 사러 소액권1「트럭」을 싣고갔다면 비유가될지 모르겠다.

<3년거듭 절하한예도>
이밖에 1차대전후 1924연도에 독일의 1조「마르크」대 1「라이피스·마르크」, 「폴란드」의 1백80만「폴란드·마르크」대 1「즈로치」, 소련의 22, 23, 24 3개년에걸친 통산 5백억분의 1「루블」 평가절하, 그리고 44년 희랍의 5백억분의 1, 48년 중국의 3백만원대 1원등이 두드러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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