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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산업 1세대 '개성 상인' 임광정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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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내 화장품 산업 1세대인 임광정(사진) 한국화장품·한불화장품 회장이 6일 별세했다. 95세.

 1919년 4월 26일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나 우리 산업계의 대표적인 ‘개성 상인’으로 불린 고인은 ‘국내 화장품 산업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부지런은 반복(半福)이다’란 생활 신조를 좌우명으로, ‘화장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경영철학으로 회사를 경영해왔다.

  61년 10월 한국화장품을 설립하면서 “품질에 관한한 단 하나의 오차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개성 상인’의 철저한 관리 시스템을 회사 경영에 도입했다는 게 업계의 평이었다. 62년 개발한 ‘단학 포마드’는 광물성 기름을 주원료로 한 기존 포마드에 비해 수입 피마자유를 원료로 해 품질이 훨씬 뛰어났다. 쌀 한 가마 가격이 2800원할 때 70~80원의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3~6개월의 어음으로 거래되는 화장품 업계 판매 관행을 깨고 현금을 줘야 제품을 공급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선진 기업과의 제휴에도 일찌감치 나섰다. 60년대 일본의 주주·단조화장품 회사와 원료 및 기술 제휴를 체결했고, 80년대엔 프랑스 로레알사와 기술제휴했다. 10여 년간의 포마드 시대가 지나가자, 재빨리 ‘쥬단학’이라는 브랜드로 여성 화장품 시장을 공략했다. 방문 판매 시스템을 도입해 매출을 늘려 갔고, 무차입 경영으로 1·2차 오일쇼크 때도 큰 위험 없이 위기를 넘겼다.

  체육문화 발전에도 열정을 보였다. 75년 한국화장품 여자농구단을 창단, 여자 농구붐을 일으키는 데도 기여했고, 70년 대한야구협회 회장에 이어 81년 아시아 야구연맹 회장을 맡기도 했다. 87년 실업여자탁구단을 만들어 현정화라는 세계적인 탁구 스타를 키워냈다.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을 통한 대회 우승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고 임 회장은 2005년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국화장품은 장남 임충헌(72) 회장이 경영하는 한국화장품과, 삼남인 임병철(54) 사장이 경영하는 한불화장품으로 분가돼 각각 독립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유족은 부인 최상화씨와 아들 충헌·현철(한불화장품 부회장)·병철·성철씨 등.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영결식은 29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에서 한국화장품과 한불화장품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이다. 02-2072-2091.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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