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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와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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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군대를 단순히 물리적인 측면에서만 관찰한다면 이는 「무장된 폭력 집단」에 부과할 것이다. 그러나 군은 내적으로는 「군기」로 위계 질서를 율하고 외면적으로는 애국심과 충성심을 구심점으로 한 윤리를 기반으로 그의 용도를 국가 보위라는 임무로 엄격히 규정지어 놓음으로써 비로소 국가의 군으로서 존재 가치와 그의 기능은 빚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군에서 만일 「군기」를 빼버린다면 그 군대는 흉악한 하나의 폭력 집단으로 전락되고 만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군에 있어서 「군기」란 군의 「명맥」이라고까지 강조하는데는 이를 의미하는 까닭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특수한 성격상 군의 기조는「피라밋」형을 이루고 있는 거대 계급 사회이다. 이점 최근 긴박해진 상황으로 인하여 군장비의 현대화나 강화가 국민의 여망으로 고조되고 있으나 군의 정신적 자세야말로 모든 전력의 원천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군의 정신적 개선은 이보다도 오히려 선행되어야만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것은 우방의 도움 없이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며 동시에 이것만은 원조로도 해결할 수 없는 배타적인 우리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특히 근래 연발하는 거의 불미스러운 사고와 군기범들은 국민의 깊은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으며 군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커짐에 따라 이 우려와 실망은 더욱 심각한 명제로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군으로서도 대오각성하여 비상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한국군의 특수한 위치를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원래 군기란 그 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국민성 그리고 군대의 오랜 전통과의 복합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군은 이점 아직도 젊고 전통이 확립되지 못하였으며 그것도 한국전쟁 당시 갑자기 팽창된 군대이다. 외국 군대의 외양적 모방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진정한 국군으로서의 형이상학적인 정신적 정착이 시급하다 하겠다. 그러나 군기란 군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나라 군은 민주주의 체제하의 시민군대이다.
우리 인구에 비하여 과다한 비율을 점하고 있으며 이것은 전형적인 국민적 군대이다. 그럼으로써 군과 사회가 유리 차단되어 있던 봉건사회와 군국주의 군대가 그들 집단만의 독자적인 배타적 분위기를 견지하고 있었던 때와는 달리 군은 사회의 일부분이며 그 구조나 구성에 있어서도 서로 유통되는 상관 관계를 맺고 있어 양자는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밀착 상태에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도덕·윤리·풍조·가치관 등은 그대로 군의 정신적 바탕이 되며, 사회의 혼란·퇴폐·부정부패 등은 민활하게 군에 반사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방대한 양의 군대를 인구 밀도가 조밀한 국내에 배치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임무도 치안적인 것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관계로 일반 사회와 군 사회는 공간적으로도 혼돈 혼화 상태에 있다.
군의 독특한 긴장된 생활 환경과 충성과 복종의 강요와 더우기 지난 정월 사건 이후 급격히 가중된 맹훈련 등은 임무의 긴박성과 더불어 감수성이 풍부한 젊은 군인들의 시계에 들어오는 사회상과의 격차와 거리감은 반감과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며, 또는 군의 규율과 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여년간 길러 온 우리 자제들이 오늘 군에 입대하여 내일 사고를 일으켰다고 하여「군인」의 횡포로만 규정하고 간단히 처리해 버릴 수만은 없는 문제가 아닌가 한다. 더구나 이것이 일반 사회와의 관련된 사고에 있어서도 군(지휘관)의 책임만을 추궁한다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며 너무나도 안이하고 일방적인 관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신문의 3면기사에 실린 사고의 경우 그 대부분이 제대군인 운운하고 있는 언론의 처사는 공정하다고는 볼 수 없다. 이 나라의 청년중 일정한 연령에 달한자로서 병역 기피자를 제외한다면 제대군인 아닌 사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또한 사고와 불미한 행동을 저지른 극히 적은 일부 군인들만으로 군 전체를 평가한다는 것도 정당하지는 못한 것이며 결코 군을 선도하는 길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군에 있어서 지휘관이란 절대적인 존재이며 그 존엄성은 언제 어디서나 보장되어야만 한다.
다라서 그들에게는 그 지위와 권직(지휘권)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이 또한 당연한 인과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좀더 넓은 시야로 본다면 군 기강의 확립과 향상은 먼저 우리 사회의 정화와 윤리적인 향상에 그의 기저를 구해야 할 것이며 그 기조 위에서 군은 그들의 사명감에 철하고 공산주의와의 대결 투쟁에 대한 확고한 결의와 문제 의식을 견지함으로써 안으로는 군 질서의 생명인 군기를 확립하고 왕성한 사기를 진작하여야 할 것은 군의 제일적인 당면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에 대하여 국민이나 군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발전과 진보를 끈덕지게 또 일시적이 아니라 군의 존재하는 한 상시 추구하는 일대 공동 노력을 전개해야 될 줄로 안다.
이 공동 노력에 있어 국민과 군의 각 책임자들은 당위성과 이에 대한 요구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냉철하게 타진하여 효율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서 이 어려운 문제를 하나하나 착실히 해결해 나가도록 관대한 이해와 도움을 아껴서는 안될 줄 믿는다.
군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국민적 토대, 국민적 지원 그리고 그의 양성과 부담 위에서 형성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군은 국가와 국민의 간성으로서 지혜롭고 용맹하며 또 슬기로워야 한다는 자각을 저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한 군만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군은 그의 특수한 생활 방식 관계로 가정과 학교와 사회의 삼자를 한군데 묶어 놓은 것과 같은 환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적령에 달하면 모든 남성은 법에 따라 일률적으로 복무하게되는 군은 결과적으로 국민교육과 민족성 형성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과 아직껏 정착을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애국심을 구체화하고 실천하는 훈련 도장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이 종합 교육장에 있어서 감수성이 극히 예민하고 인격 형성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연령층인 청년들에게 군의 간부는 크나큰 인간적 감화와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도 자성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협동과 규율, 근면과 투지, 조직과 능률 그리고 정당하고 원만한 상하 관계 등은 우리사회에 있어서도 배우고 고쳐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아닌가 한다. 거의 집단적 혹은 개별 행위와 언동 그리고 국민과의 관계는 그 자체가 정치성이 강한 공산주의와의 국내전 대결에 있어서 승패를 판가름할 수도 있을 만큼 중대한 전쟁 수단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항상심하여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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