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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김영희 칼럼

비상구 찾는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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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김정은이 놓인 상황을 이렇게 비유할 수가 있겠다. 아이는 미사일을 가지고 전쟁놀이를 했다. 장난감 물총 쏘듯 미사일을 쏘았지만 어른들은 아이에게 “이것 받고 위험한 불장난 그만하라”고 선물을 내밀며 달래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들은 주던 선물까지 끊어버리고 아이를 왕따시켰다. 아이는 체면치레할 만큼의 보상도 못 받고 미사일 전쟁놀이를 접어야 했다. 그리고 믿을 만한 부하를 가장 인심 후한 어른에게 보내 그의 심기를 풀어주어야 했다. 아베라는 작은 어른이 용감하게 “우리끼리 잘해보자”며 손을 내밀어 덥석 잡기는 했지만 다른 어른들의 태도는 여전히 냉랭하니 어쩌랴.

 김정은은 이렇게 해서 측근 실세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용해를 중국에 특사로 보냈다. 지난 5개월 동안 북한은 중국의 완강한 반대를 무시하고 장거리 로켓 발사와 세 번째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러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살벌한 수사(Rhetoric)를 동원하여 한국과 미국에 전쟁위협을 쏟아냈다. 북한의 부동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중국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과 중국의 고위 인사들이 북한에 중국 문 앞에서 말썽 부리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하게 경고하고, 중국 중앙은행은 북한의 대외거래를 총괄하는 조선무역은행과의 거래를 끊고 대북 수출품 통관절차를 강화했다.

 김정은은 처음부터 실제로 무력도발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대내적으로 강력한 지도자 이미지 확산으로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미국과 직접협상을 바라고 구두도발로 위기를 최대한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강력한 힘의 과시로 대응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도전에 밀리던 미국은 북한의 전쟁위협을 기회 삼아 B-2와 B-52 같은 첨단 전략폭격기를 한·미 합동 독수리훈련에 참가시켜 한국에는 미국의 억지력의 건재함을 보이고, 북한의 도발의지를 꺾고, 중국에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인 존재를 과시하는 삼중효과를 동시에 거두었다. 핵잠수함의 동해 배치는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억지력이었다. 미국은 김정은과 북한 군부에 분쟁재발은 북한체제의 위기를 의미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박근혜정부도 북한의 휴전협정 무효 선언과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체면치레할 구체적 제안을 기대하던 김정은에게 돌아온 것은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말뿐이었다. 박 대통령의 5월 초 미국 방문에서도 한·미 동맹 재확인과 대북 강경발언만 나와 김정은의 기대가 무너졌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들었던 주먹을 내려야 했던 김정은은 동해로 미사일 세 발을 발사하고 미사일 전쟁놀이를 접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한·미·일 대북공조를 이탈하고 특사를 평양에 보낸 것이 고립 속의 김정은에겐 뜻밖의 행운이었다.

 최용해를 중국에 보낼 특사로 결정한 것은 김정은의 일석이조의 절묘한 선택이다.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과 다른 장군들이 함께 갔다. 김정은이 지금의 위기를 주도했거나 그 동기를 부여한 최용해에게 중국 특사의 큰 임무를 준 것은 “위기를 주도적으로 조성한 네가 중국에 가서 위기 종식과 대화 수용 의사를 밝히라. 그리고 돌아와서 두말하지 말라”는 고도로 계산된 메시지일 것이다.

 김정은에게는 6월 7~8일 오바마·시진핑 회담에 앞서 시진핑에게 자신의 입장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미·중 정상회담은 5월 초 한·미 정상회담과 6월 하순 한·중 회담과 함께 한·미·중 3각 연쇄 정상회담의 핵심고리다. 위기국면이 계속된다면 연쇄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어떤 불리한 이야기가 나올지 모른다. 김정은의 불안이 특사파견의 직접적 동기로 보인다.

 한·미·중 연쇄 정상회담 사이에 김정은의 특사가 중국에 간 것은 고무적이다. 최용해의 방중 결과 김정은의 조기 중국 방문이 실현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위기는 확실히 진정국면으로 돌아섰다.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최선의 질서로 생각한다. 그래서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제법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중·장기적으로 핵·미사일을 포함한 북한문제를 풀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까지 갈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중국은 6자회담부터 재개하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이 실전단계 직전에 와 있는 지금 재개되는 6자회담은 과거의 6자회담과 같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구체적인 구상은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남북대화 재개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대화 없이 신뢰 프로세스의 신뢰가 구축되지 않는다. 개성공단 정상화 논의가 대화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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