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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은 2모작 과일이다? (O) 가장 맛있는 수박은 요즘 나오는 1모작이다? (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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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경남 함안군 월촌리의 비닐하우스에서 박분연 광일영농조합법인 대표(왼쪽)와 신현우 이마트 바이어가 함께 수박의 당도에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사진 이마트]

16일 경남 함안군 월촌리의 한 비닐하우스. 월촌리에는 수박 비닐하우스만 500여 개가 있다. 밭고랑 양쪽으로 농구공만 한 크기(직경 약 30㎝)의 수박들이 보였다. 비닐하우스 주인 김영수(53)씨는 “최근 5년 중에 올해 수박농사가 가장 잘됐다. 시원한 맛이 나면서도 달아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런데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서는 수박은 보이지 않고 잎사귀와 줄기만 무성했다. 김씨는 “여기는 한 달 전에 이미 수확을 마친 밭”이라고 말했다. ‘수박이 아니라 다른 작물을 심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6월 중·하순을 목표로 두 번째 농사를 짓는 곳”이라며 “옆 하우스에서 봤던 수박도 사실 2모작 작물”이라고 덧붙였다.

하우스 재배기술 발달로 겨울에도 수확

 수박은 1990년대 이후 하우스 재배가 일반화되면서 ‘2모작 과일’이 됐다. 수박을 키우는 데 있어 날씨 영향을 비교적 덜 받기 때문이다. 수박은 한 줄기에서 3~5번 수확하는 참외·딸기와 달리 한 줄기에서 한 번만 수확할 수 있는 대신, 재배기간이 다른 작물에 비해 30일 정도 짧아 100일 정도면 수확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1모작 수확 후 밭을 갈아엎고 같은 자리에 모종을 다시 심는 2모작이 가능하다.

 함안이 국내 최대 수박산지인 이유도 이곳이 수박 2모작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1800여 농가가 매년 수박 약 60만 통을 생산한다. 통계청 기준으로는 전국 수박 생산량의 14% 수준이다. 함안에서는 12월부터 이듬해 6월 말까지, 1년 중 절반 이상 수박 생산이 가능하다. 전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수박을 재배할 수 있는 곳이다.

광일영농조합법인이 운영하는 비파괴 당도선별기의 내부 모습. 24개의 램프를 통해 근적외선을 수박 몸체로 쏴 돌아오는 반사값을 당도값으로 변환해 맛없는 수박을 추려낸다. 이 기계의 하루 작업량은 5000~7000통이다. [사진 이마트]

 5월 하순께 함안에서 나오는 수박은 두 종류다. ▶12~2월께 이미 수확을 마친 비닐 하우스에서 2모작한 수박이거나 ▶올해 처음 수확하는 1모작 수박이다. 1모작 대 2모작 수박의 비율은 2대8 정도다. 김씨는 “지금 생산되는 함안 수박은 대부분 2모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김씨 하우스 옆에서 약 6600㎡(2000평) 규모로 수박농사를 짓는 이근수(46)씨도 “1모작 수박은 1월 초에 씨를 심어 4월 말에 출하됐으며, 2모작은 이달 초에 심어 6월 하순에 출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일부 농가는 2모작 후 그 자리에 벼를 심거나 수박 3모작을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익산·논산·달성 2모작 … 일부선 3모작도

 한반도 내 수박 수확기는 산지별로 조금씩 다르다. 대체로 남부지방이 중부지방보다 빠른 편인데, 기상청이 매년 발표하는 벚꽃 개화 예상지도나 단풍시기 예상지도와 유사하다. 우선 최초 출하지인 경남 함안·의령에선 12월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수박이 나온다. 수박 도매업을 23년째 하고 있는 박분연(53) 광일영농조합법인 대표는 “겨울철 마트에서 구입하는 국내산 수박 전량이 함안·의령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5월 초가 되면 2차 산지인 전북 익산·완주와 충남 논산, 그리고 대구 달성·경북 고령에서 수박이 쏟아져 나온다. 시기적으로는 익산·논산이 대구·고령보다 10일 정도 빠른 편이다. 5월 중순~6월 초에는 3차 산지인 전북 고창·정읍, 충남 예산·서천, 경북 안동까지 수박 출하지가 올라간다. 하우스 안이 40~50도로 ‘찜통’이 되는 7월 초가 되면 ‘맹동 수박’으로 유명한 충북 음성까지 북상한다. ‘수박 벨트’가 지역별로 차례대로 형성되는 것이다.

 1모작 수확 후 100일 정도가 지나면 2모작 수박 벨트가 1모작 때와 마찬가지로 서서히 이동한다. 겨울철에는 90~100일 정도 지나면 2모작 수박을 수확할 수 있고, 봄·여름철에는 85일, 한여름에는 70일 정도만 지나면 2모작 수확이 가능하다. 따라서 남부 지방에서는 1모작 수박이 생산되지만, 충청 지역에서는 2모작 수박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기온이 20도 안팎인 5월 초순이 되면 충남 부여·논산과 전북 익산에선 1모작 수박 물량이 본격적으로 나오지만, 1차 산지인 경남 함안·의령에선 2모작 수박이 대다수다.

1모작 수박, 당도 더 높고 크기 10% 커

 1모작과 2모작은 수박 맛에도 영향을 끼친다. 박 대표는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9대1가량으로 1모작 출하량이 절대적으로 높은 5월 말이나 6월 초에 맛 좋은 수박을 고를 확률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이 시기에 논산과 익산 등지에서 1모작 수박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1모작 수박은 2모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당도가 1~2브릭스(당의 농도를 일컫는 단위) 정도 높고 크기도 10%가량 큰 편이다. 함안수박의 경우 1모작 수박의 평균 당도가 12~12.5 브릭스이고, 2모작은 11브릭스 정도다. 이마트 신현우(수박담당 바이어) 과장은 “그동안 소비자가 사먹은 수박 맛이 들쭉날쭉했던 이유도 2모작 수박을 골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모작 수박이 모두 ‘맛있는 수박’은 아니다. 맨땅에서 키운 노지수박은 7월 하순~8월 초에 등장하는 1모작이지만 맛에 있어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장마철에 수확하기 때문에 수박에 수분이 많아 당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겨울 수박도 1모작 작물이지만 당도는 5월에 생산되는 수박보다 1~2브릭스 정도 낮은 편이다.

 또 2모작 수박이 모두 ‘맛없는 수박’도 아니다. 2모작 수박 중에서도 당도가 12브릭스 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수박농가와 유통업체들은 당도가 높은 2모작 수박을 생산할 목적으로 고품종 종자 확보에 나서고 있다. 마트 입장에서도 수박은 여름철(6~8월)에 단일 상품으론 보기 드물게 월 매출이 100억원이 넘는 효자 품목이다. 신 과장은 “1모작 수박만으로는 여름철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며 “수박은 마트의 여름 대표상품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수박을 고르기 위해 각종 아이디어를 쏟아낸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상품은 ‘흑피수박’이다. 흑피수박은 껍질이 짙은 청록색을 띠는데 일반 수박보다 뿌리도 깊게 자라고 줄기도 튼튼하다. 이 때문에 장마철에도 잘 견디는 편이고 2모작 수박이지만 당도는 일반 수박보다 1~2브릭스 높은 13.5 브릭스 정도다.

함안=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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