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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 예산은 역시 쌈짓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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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갑생
JTBC 사회 1 부장

6개월 전께다. ‘SOC 예산은 쌈짓돈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대선 후보들이 너도나도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복지 공약을 쏟아낼 때였다. 당시 공약 이행을 위한 뾰족한 재원 마련 대책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다고 증세 얘기를 꺼내기엔 부담이 너무 커 보였다. 결국 누가 집권하든 20조원이 넘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에 눈독을 들일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쌈짓돈처럼 꺼내서는 복지 공약 실천에 쓸 가능성이 커 보였다. ‘토건족’이니 하면서 SOC 투자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으니 가져다 쓰는 데 부담도 적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 우려됐다. 칼럼 말미에 SOC 투자는 결코 복지 투자의 대척점에 있지 않고 오히려 보편적 복지 측면이 강해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고 적은 이유다.

 그런데 씁쓸하게도 그 우려가 꼭 들어맞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 얘기다. 이 회의에선 복지 공약 이행을 위해 필요한 135조원의 조달 방안이 논의됐다. 세입에서 53조원을 더 걷고 향후 4년간 세출에서 82조원을 줄이기로 했다. 세출구조조정 대상 사업을 관장하는 부처별로 7~14%의 세출 구조조정 계획을 받은 결과다.

 이 중엔 SOC 예산 11조8000억원도 포함돼 있다. 아니 감축 대상 0순위였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국토교통부는 도로에서 4조원, 철도에서 4조5000억원가량을 덜 쓰겠다고 밝혔다. 하천 정비 같은 수자원 관련 예산도 삭감 대상이다. 이 때문에 국토부 안팎에서는 신규 사업은 최대한 안 하고 현재 진행 중인 사업 위주로만 예산이 투입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국토부 간부는 “예산이 줄어도 너무 줄어든다”며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에 많이 의존해온 건설업계에도 타격이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벌써부터 안성구간 상습 정체 해결을 위한 제 2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불투명하다느니, 88고속도로 확장공사가 늦어질 거라느니 하는 말도 돈다.

 공약을 지키는 건 필요하다. 국민에 대한 약속이니만큼 최대한 이행해야 한다. 또 그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수긍이 간다. 문제는 수치부터 정해놓고 무조건 줄여야 한다며 가하는 압박감이다. 국토부 발표대로라면 한 해 SOC 예산을 10~12%씩 감축해야 한다. 매년 3조원 가까운 돈을 안 푸는 것이다. 여당에선 한술 더 떠 매년 14%씩 줄이는 방안을 얘기하고 있다.

 이 같은 숫자 지키기에 얽매여서는 사업을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 효과를 꼼꼼히 따져보고 판단하는 절차도 제대로 거칠 수 없다. 옥석을 가리기 힘들다는 얘기다. 불요불급한 사업은 걸러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에선 지역균형발전이나 도시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사업까지 휩쓸려 갈까 우려되는 게 사실이다. 다시 한 번 당부한다. 부디 편견을 버리고 냉철한 시각으로 SOC를 바라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강갑생 JTBC 사회 1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