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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집단소송제가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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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일러스트=강일구]

Q 최근 신문·방송을 보면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위해선 집단소송제라는 것을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집단소송제는 무엇이고,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영업을 하다 보면 간혹 법을 어기는 행위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피해자는 법원에 소송을 내서 해당 기업에 손해를 물어달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피해자의 숫자가 한두 명일 때도 있겠지만 굉장히 많을 때도 있습니다. 예컨대 A라는 기업이 불량식품을 팔았는데 그 식품을 사먹은 사람이 10만 명쯤 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이런 경우엔 피해자들이 모두 모여 다 함께 법원에 소송을 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일부가 소송을 걸어 이기면 같은 피해를 본 다른 사람들은 따로 소송을 걸지 않아도 똑같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생겨났습니다. 이게 집단소송제입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자격으로 ‘소송’을 낸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Class Action’이라고 합니다. 보통 손해배상 소송은 재판에서 이기든, 지든 “나도 할게”라고 참여의 뜻을 밝힌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하지만 집단소송은 “나는 빼줘”라고 분명한 뜻을 밝히지 않았으면 법원 판결의 효력이 같은 조건의 피해자에게 공통적으로 미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집단소송 원조는 영국, 활성화는 미국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집단소송의 원조는 영국입니다. 이미 400년쯤 전에 영국에서 집단소송과 비슷한 형태의 재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집단소송이 가장 활성화된 곳은 미국입니다. 특히 1966년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봅니다. 이 해에 미국 대법원이 집단소송에 대한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그 전에도 관련 규칙이 있긴 했지만 워낙 요건이 까다로워서 실제로 집단소송이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합니다.

담배소송 1심, 160조원 배상 판결도

 90년대 들어선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는 집단소송이 잇따라 터져 나왔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담배 소송입니다. 담배를 피우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여전히 많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잘못이지만 담배가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지 충분히 알리지 않은 담배회사도 잘못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 플로리다주에선 흡연자들이 모여 담배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습니다. 99년 플로리다주의 1심 법원은 담배회사들이 흡연자들에게 1450억 달러(약 160조원)를 물어주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손해배상 액수가 워낙 커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대로 돈을 물어준다면 담배회사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습니다. 담배회사들은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상급 법원으로 재판을 끌고 갔습니다. 그 결과 플로리다주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습니다. 집단소송으로 인정할 수 없으니 개별적으로 소송을 다시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우코닝이란 회사를 상대로 했던 여성들의 집단소송도 유명한 사건입니다. 여성의 가슴을 크게 하는 수술에 쓰인 실리콘젤이 건강에 해롭다는 점을 회사가 알고도 숨겼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98년 다우코닝은 피해자들에게 32억 달러(약 3조5000억원)를 물어주기로 합의했습니다. 한국 사람도 660명이 피해자로 인정돼 보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소송으로 거액을 물어주게 된 다우코닝은 결국 법원에 파산보호(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이 사건은 집단소송에 잘못 대처하면 대기업도 무너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널리 알려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도입하려는 집단소송제는 미국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미국에선 소비자에게 피해를 줬다면 거의 모든 사건에 집단소송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집단소송을 할 수 있는 사건의 종류를 엄격히 제한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공정거래법을 어긴 사건에 대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지난달 중앙일보가 공정거래법을 다루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 1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대다수인 93%가 집단소송제 도입에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의 어느 조항을 어겼을 때 집단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냐에 대해선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립니다.

한국, 공정거래법 위반에 도입 추진

 현재 국회에는 두 건의 법률안이 올라가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이만우 의원이 낸 법안과 진보정의당의 노회찬 전 의원이 낸 법안입니다. 이 의원안은 업체들의 담합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봤을 때만 집단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담합은 업체들이 서로 짜고 물건값을 올리거나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도록 방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예컨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라면을 만드는 회사들이 서로 짜고 라면값을 올린 것을 적발하고 1354억원을 내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 돈은 피해를 본 소비자가 아닌 정부 금고로 들어갔습니다. 이런 경우 집단소송이 가능하다면 모든 라면 소비자가 골고루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 전 의원안은 담합 외에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행위 등에 대해서도 집단소송을 허용하자는 내용입니다. 요즘 신문에 자주 나오는 ‘갑-을’ 관계, 즉 ‘갑’이란 힘센 업체가 거래 관계에 있는 약자인 ‘을’을 괴롭히는 것은 불공정 거래행위에 속합니다. 두 건의 법안 중에선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여당)인 새누리당 소속 의원의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증권 집단소송만 인정 … 실제 배상 단 1건

 현재 우리나라는 증권 관련 사건에서만 집단소송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주가조작이나 분식회계로 피해를 본 소액주주들이 50명 이상 모이면 집단소송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건이 까다로워서 실제로 집단소송을 내는 경우는 드뭅니다. 2005년에 증권 집단소송이 도입됐는데 이후 8년간 집단소송 건수는 5건에 그쳤습니다. 현재까지 피해 보상을 받은 경우는 단 1건뿐입니다. 2010년 진성티이씨라는 코스닥 상장사가 소액주주들에게 27억원을 물어준 게 전부입니다.

 집단소송과 비슷한 제도로 단체소송이 있습니다. 소비자단체처럼 일정한 요건을 갖춘 ‘단체’가 피해자들을 대신해 소송을 내는 것입니다. 집단소송이 미국식이라면 단체소송은 독일에서 발달한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소비자기본법에 의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금지 또는 중지시켜 달라는 단체소송을 법원에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단소송처럼 소비자들의 피해를 돈으로 물어내라는 내용의 단체소송은 우리나라 법에선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정완 기자

◆ 진성티이씨에 대한 증권 집단소송

2008년

11월 14일 파생상품 손실 뺀 분기결산 보고서 공시

12월 18일 파생상품에서 175억원 손실 발생 공시

2009년

1월 15일 불성실 공시법인 지정 및 주식 거래 정지

4월 13일 소액 투자자들, 증권 집단소송 허가 신청

6월 24일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 집단소송 대표당사자로 선정

2010년

1월 21일 수원지법, 증권 집단소송 허가 결정

4월 30일 수원지법, 현금+주식 29억원 지급하는 화해 허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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