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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통상임금 문제, 노·사·정 대화로 푸는 게 맞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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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그제 통상임금 문제를 노·사·정 대화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통상임금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訪美) 기간 중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하면서 표면화됐으나, 실은 지난해 3월 대법원이 “정기적인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 줄곧 논란이 된 사안이다. 실제로 대우조선을 비롯한 60여 개 기업이 통상임금과 관련된 소송에 휘말려 있고, 민주노총은 집단소송을 벌일 태세다.

 문제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하급심에서는 여전히 사안별로 엇갈린 판결이 나오고 있어 노사 간의 갈등과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통상임금의 정의가 모법인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지 않은 채 시행령에 모호하게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는 통상임금을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이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떤 항목의 급여나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는지는 매번 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실 근로자의 급여체계가 단순하고, 상여금이 생산성과 연계된 성과급이라면 통상임금 논란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상여금은 대체로 생산성과 무관하게 경직된 급여 수단으로 고착된 데다, 기업 현장에서는 퇴직금 산정의 근거가 되는 기본급을 올리지 않고 임금을 올려주는 편법으로 각종 수당을 추가해 왔다. 그러다 보니 과연 어디까지를 통상임금으로 봐야 하는지가 시행령의 정의만으로는 헷갈리게 된 것이다.

 이제 그간 통상임금으로 간주되지 않던 각종 수당과 상여금이 새로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여기에 근거해 산정되는 수당과 퇴직금·사회보험료 등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이는 당장 기업의 부담을 늘릴 뿐만 아니라 무엇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것이냐를 두고 새로운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될 소지가 크다. 또 이를 매번 소송으로 해결할 경우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근로기준법이나 시행령의 개정을 통해 통상임금을 명확히 규정해야 할 이유다.

 노동계는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모든 고정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간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당장 일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에게는 이득이 될지 모르지만 노동계 전체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기업들이 고정적 성격의 상여금을 실적과 연계시켜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거나 지급 형태를 부정기적으로 바꿀 경우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 또 통상임금의 확대로 노동비용이 증가하면 기업들은 고용을 줄일 공산이 크다. 통상임금의 확대가 노동계에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노사 어느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준을 정할 경우 오히려 갈등만 부르게 된다.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해 노·사·정이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야 할 이유다. 노·사·정은 차제에 통상임금을 포함해 임금체계 전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