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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희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불교에서는 문혜·사혜·수혜를 합쳐서 삼혜라 한다. 그것을 또 대지라고도 말한다. 이것은 범부의 식과는 전혀 다르다. 이를테면 범속의 우리가 갖는 식은 우치이며, 부처는 지혜를 갖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이 도통한다는 것은 식이 지로 바뀌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때에야 비로소 심안으로 삶을 투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도통한다는 것은 범부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가령 만일에 삶의 희극성 속에서 비극을 찾아내고, 비극성 속에서까지 희극을 투시해낼 수 있다면? 가뜩이나 벅찬 삶이 더욱 지겹게 느껴질 것 같다.
희극을 그저 소박하게 희극이라고만 받아들이는게 우리네 범속의 무리에게는 좋을는지 모른다. 인사에까지『무슨 재미가 없느냐』 고 물을 정도로 재미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희극을 갖는게 좋을지도 모른다.
박흥민, 일명 「지미·P·가네시로」의 사기행각도 그저 봉이 김선달의 현대판이라고만 보면 무척 재미있는 희극감이다. 외국인이라면 우선 한수 놓고 대하는 우리네의 허점, 수사관이라면 기를 못 펴는 약점, 이런 것을 교묘히 이용해가며 실컷 「재미」를 보고 돌아 다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부러울 정도로 유쾌한 희극이다.,
이런 희극은 그냥 희극이라고만 봐두는게 우리에게는 마음 편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다시없이 서글픈 희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웃지 못할 희극이 생길수 있는게 범부들의 우치의 탓이라면 희극의 표면 밑 깊숙이 파들어 가면서 그「웃지 못할」 면을 찾아낸다는 것은 오히려 속절없는 일이기도 하다.
현대의 영웅은 바로 그와 같은 인물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저 그의 죄란 꼬리가 잡혔다는데 있다. 그리고 한국인의, 그리고 한국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놓았다는데 범부들에 대한 그의 죄악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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