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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 주관적 평가 만점 줘 탈락 → 합격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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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국제중 입학비리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되면서 교육계에선 국제중 폐지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국제중이 설립목적을 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존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2009년 국제적 인재를 기른다는 목적으로 세워진 영훈·대원국제중은 사실상 특목고·자사고 입학 통로가 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안상진 부소장은 “국제중이 특목고 입학 통로로 이용되면서 국제중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서울시교육청 감사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입학전형 성적 조작이다. 영훈국제중은 모집 정원의 3배수(384명)를 뽑는 일반전형 1차 서류전형 과정에서 담임교사 추천서와 학생의 자기개발계획서 등을 평가하는 주관적 영역(23점) 점수를 고치는 방식을 썼다. 객관적 영역에선 합격권에 들지 못했던 6명이 이 영역 만점을 받고 1차 전형을 통과한 것이다. 학교 측은 시교육청 감사에서 성적 조작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영어캠프 참석자나 학부모 면담 내용을 토대로 입학 부적격 대상자를 떨어뜨리기 위해 성적을 고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부적격 대상자’ 명단에 구체적으로 누가 올라가 있는지에 대해선 진술하지 않았다.

 시교육청은 학교가 합격자를 내정하고 이들의 성적을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논란을 빚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도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으로 합격했지만 합격 내정자 포함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학교가 성적 조작까지 했다면 학교와 일부 지원자 부모 간에 입학을 대가로 한 금전거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영훈국제중이 감사에 앞서 최근 3년간 지원자들의 채점 원자료를 모두 폐기한 점도 의혹을 증폭시키는 부분이다. 채점 과정에서 최소한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지원자의 이름과 수험번호를 가려야 하지만 이 역시 지키지 않았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입시 원자료를 보관하는 건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말했다. 

국제중 입학 비리가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교육계와 시민단체들은 격앙된 분위기다. 김무성 한국교총 대변인은 “가장 공정하고 깨끗해야 할 학교가 성적 조작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진보성향의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영훈·대원국제중에 대한 인가를 취소하고 국제중 존폐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수성향의 바른사회시민회의도 성명을 통해 “학교가 학생선발권을 비리의 수단으로 악용했다면 인가 취소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교육청이 당장 이들 국제중의 인가 취소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국제중은 5년마다 평가를 통해 지정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인정돼야 인가를 취소할 수 있다. 영훈국제중에 대한 평가는 2015년 상반기로 예정돼 있다. 검찰 조사와 재판을 통해 입학부정이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학생들의 합격을 취소하기는 어렵다. 시교육청 조승현 감사관은 “입학부정은 학부모가 개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학생에 대한 입학 취소는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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