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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 개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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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낚시「시즌」이 왔다. 금년의 제1착으로 월척붕어가 기록된 고삼저수지는 자유당때 만들어 놓은 연못이다. 당시 그지방주민들은 용인출신 국회의원 신의식씨를 앞장세우고 1개면에 긍하는 너무나 광대한 지역이 침수된다는 이유로 수리조합설치 반대진정을 해온 일이 있다. 그러나 자유당 정책위원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후 내가 형무소에 갔다 나와서 낚시터 소식을 들어보니 고삼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곧 가서보았다.
나와 동반해 갔던 이영언씨는 지방사람들을 접촉해보고 그들이 내가 온것을 알고 낚시를 중지하고 곧 서울로돌아가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만일 더오래있다가는 지방 젊은사람들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논밭이전부 침수되어 이제는 못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토지배상금을 받기는 했지만 재빨리 대토도 구해놓지못하고 그돈은 이리저리 소비해버리고 못살게되니 자유당의 간부였던 내가 보기싫다는것이다. 그후 고삼은 서울근방에서 제1급의 낚시터로 등장했다. 서울낚시회 「버스」가 매주 40∼50대씩 몰려 내려가고 낚시군수천명이 들끓었다. 주민들은 밥장사 배나르기를 시작했다. 내가 가면 그제는 좋은얼굴로 맞아주기도했다. 이제는 농사짓는것 보다 살기가 좀 나아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젊은사람들을 만나서 서울 낚시꾼들을 계속오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고기가 보호되어야한다는것을 역설했다.
그후 그젊은 사람들이 중심이되어 고기보호의단체도 조직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단체도 그물을 막지는 못했었다. 그물장이와 그들과의 충돌도 누차있었던 모양인데 얕은 물가에 몰려드는 산란기, 가물의 감수기, 가을회유기에 고기의 씨를 지우는 그물은 낚시의 명승지가 된고삼에서도 없애 버릴수가 없었다. 2∼3년전부터 서울낚시꾼들의 발은 멀어졌다.나도 자연 가보지 못했다. 지방주민들은 또다시 생활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을것인데 이제는 누구를 원망하고있는지 모르겠다. 지방주민의 생활도 문제거니와 도시생활이 번잡해짐에 따라시민들의 건전한 「레크리에이션」운동에 대하여서도 국가의 시급한 대책을 요할때가 왔다. 해마다 급속도로 대중에게 보급되어가는 낚시를 위하여 낚시터의 개발도 당국의선처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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