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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박영숙 전 평민당 부총재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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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박영숙

한국 여성 운동의 대모(代母)로 불리던 박영숙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이 17일 오전 별세했다. 81세. 평양 출신의 고인은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기독교여자청년회(YWCA)에서 여성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YWCA연합회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1986년 전두환 정권에서 일어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당시엔 ‘여성단체연합 성고문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데 앞장섰다.

 남편은 안병무(96년 작고) 전 한신대 명예교수다. 여성운동을 하던 67년에 만나 결혼했다. 안 전 교수는 박정희정부 시절 3선 개헌 반대 100만 명 서명 운동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하다 두 차례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고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여사의 대학 후배로 김 전 대통령 부부와 인연이 깊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구명 운동에 앞장섰고, 87년 김 전 대통령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자 부총재를 맡았다. 그해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TV 찬조 연설자로 나서기도 했다. 88년 13대 총선에선 여성 최초로 비례대표 1번을 받아 원내에 진출, 평민당 총재 권한대행도 지냈다.

 김대중정부 시절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과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을 역임했다. 이런 인연으로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선 추도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고인은 환경·기부 분야에도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 등을 두루 맡았다. 99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시절부터 ‘100인 기부 릴레이’를 주도하면서 기부 문화 확산에도 기여했다.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리지 두런두런’을 창립(2011년)했으며, 장학재단 ‘살림이’ 이사장을 맡는 등 사회 공헌 활동에 앞장섰다.

 이런 이력 때문에 지난해 2월 개인적 인연이 없는 안철수 의원으로부터 기부재단인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재단)의 이사장직을 제의받아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올해 3월 암투병을 하게 되면서 물러났다.

유족은 아들 안재권(번역가)씨, 며느리 박은정(인제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02-2227-7550.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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