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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봄의 음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누구던가, 슐픈빛이라고 말했다는 보라빛「스웨터」가 방바닥에 구르고 겨울동안 어두운빛에 잠겼던 그림, 물감접시들이 찾아온 봄의양광(陽光)에 비쳐 눈부시게 활기를띤 아침이다.
옥인동 꼭대기까지 올라간「코로나·택시」의「클랙슨」소리와 고물장수의 가위소리, 그리고『헌 화장품 갑이나 머리카락 파세요」- 외치는 여인의 높은「소프라노」가 봄빛을 타고 한층 생기있게 메아리져 온다.
방안엔 아직도 난로가 타고 있다. 가만히 귀를 대면 금속에 부딪쳐 발산하는 불길이「쏴아」하니 소나기 소리같은 향수(鄕愁)를 부른다.
꿈을 쫓아 대기권밖을 가는듯했던 나의 반평생속에는 홍역을앓던 아이를 딥다업고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리던 청춘시절의 사연들이 피어있다. 그것들을 들추면 나의 가슴은 예외없이 뻐근해진다. 나는 지금 뭔지 울먹이는듯 울렁거리는 가슴을 잠시달래며「후유」한숨을 내쉬어본다.
봄은 분명 모든 생물체뿐아니라 화폭과 물감접시까지도 밝게 소생시켜주는 계절, 정지했던 고동도 살아날것같은 희망을 느끼게한다.
칠순이 다가온 우리어머니의 가슴에도 봄은 오고 있다. 어머니는 참 젊으시다.
어머니는「기타」반주의 노래를 좋아하신다. 그 노래를 들으면 몸이 들썽들썽 한다고 하신다. 그런데 유독 어머니가 싫어하는「재즈·싱거」가 노래를 부르자,『지랄한다』하고 그리운 엉덩이를 흔들면서「텔리비젼」옆을 떠나버린다.
봄은 구성진 계절이기는 하지만 온갖 미지의 비극을 인간에게 잉태시켜 주기도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슬기로운 사람들은 봄을 두려워하는가?
태양은 자비로운 미소를쏟고 산과 마을은 온통 봄맞이 표정인데 지붕에서 후당땅 간짓대 부러지는 소리가 나를 놀라게한다. 시새우는 바람이 한바탕 스쳐갔다.
그후 봄빛을 타고 생기를 찾던 모든 소리가 파장을 이루듯 파르르 떨리는 것 같다. 나의 인생관, 예술관도 봄하늘에서 떨고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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